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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정혁 Jun 27. 2021

(초단편소설) 월광을 머금어 꿀을 끌어당긴 떡

달빛을 그러모아 만든다고 했다. 엄마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엄마는 떡이 가득 담긴 소쿠리를 창가에 놓고 다음날 해가 뜨기도 전부터 손으로 다졌다. 간밤에 달빛이 떡을 숙성했는지 그게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엄마는 늘 그 달빛이 떡에 온기를 불어넣고 악귀를 태워버린다고 믿었다.


작업의 끝은 떡과 고물을 한 주먹씩 손으로 으깨 잡아 꿀을 바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완성된 떡은 정성스레 비닐로 포장돼 엄마의 머리로 올라갔다. 엄마는 떡을 이고 골목골목을 다녔다. 떡이 팔릴 때마다 엄마의 머리는 가벼워졌고 주머니는 채워졌다.


겨우 온종일을 다녀 마침내 엄마 머리에 떡이 남지 않았을 때 엄마의 주머니엔 지폐 뭉치라고 부를 수 있는 얼마의 돈들이 들어찼다. 그 돈으로 나는 연필과 공책을 사서 책가방에 넣고 학교를 오갔다.


다음날에도 떡은 달빛을 받기 위해 창가로 갔고 완성된 떡은 꿀을 머금어 엄마 머리에 올랐다. 그사이 요만큼의 돈은 엄마의 주머니에 들어왔다가 나를 위해 빠져나가고를 반복했다.


우리의 가난은 그렇게 뫼비우스 띠처럼 끝을 모르고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적어도 달빛과 꿀 수준의 떡으로는 어림도 없다는 걸 나는 크면서 깨달았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가라는 엄마와 장사를 하겠다는 나 사이의 갈등은 여기서 시작됐다. 나는 고만고만한 성적으로 그저 그런 대학에 가는 건 엄마의 달빛을 머금은 떡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전혀 특기할 만한 어떤 무기가 없는 공산품이 되는 것과 하등 차별점이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달랐다. 공산품도 팔리는 공산품이 되기 위해 노력하면 그것으로 지금과 같은 수준의 삶에선 벗어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른바 어느 부류에 속할 것이냐의 문제로 나는 이해했다. 안전망이 있는 곳에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최고라는 그런 시대 의식에서 엄마는 결국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라고 나는 반박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듯이 나는 그렇게 대학을 가지 않았다. 이왕이면 떡 장사를 옆에서 보고 자랐으니 그것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묘한 독기까지 품었다. 저 달빛이 정말로 떡에 특별함을 불어넣는다면 어떨까. 달빛과 떡에 바르는 꿀이 오묘한 화학반응을 일으켜 온 세상 사람의 눈과 혀를 사로잡는 비밀의 열쇠로 성공의 문을 열어주면 어떨까. 그런 상상에 사로잡혀 내가 진화시킬 떡 장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월광을 머금어 꿀을 끌어당긴 떡’이라는 떡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나는 비로소 성공의 문을 열어젖혔다. 어차피 세상만사 떡이라는 건 별다른 차별성을 주기 어렵다는 판단에 나는 스토리와 희소성을 더하는 것에 모든 걸 집중했다.


이름을 저렇게 길게 만든 건 ‘저게 뭐지?’라는 순식간이고 원초적인 궁금증으로 한 번쯤은 시선을 사로잡게 만드는 원료로 사용했다. 원래 달빛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것 아닌가. 나는 달이 스스로 빛을 내지 않으며 태양광이 달에 반사돼 비치는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 달빛은 허구라는 걸 학교에서 배웠다.


그렇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들은 달빛을 믿었고 그렇게 학교에서 배운 건 깡그리 잊어먹었다. 아니면 그걸 배우던 시간에 졸았거나 말이다. 나는 ‘월광을 머금어 꿀을 끌어당긴 떡’이라는 독특하고 긴 이름으로 떡 이름을 지은 뒤에 그것을 정말로 엄마가 만들던 방식 그대로 만드는 과정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떡은 동네 떡집에 있는 가래떡 중 유독 희고 통통한 것으로 골랐다. 바르는 꿀은 모든 상표를 떼어내고 마치 직접 꿀 농장에서 공수한 것처럼 상상할 수 있도록 여백으로 남겼다.


그 뒤엔 일사천리였다. 가장 중요한 가격은 떡 하나에 이십만 원으로 책정했다. 그렇다. 단번에 누군가는 사기라고 부를 정도의 가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사기라고 부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반드시 이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이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런 장치를 위한 마침표 성격으로 나는 하루에 하나씩만 이 떡을 판매한다고 법칙을 세웠다. 희소성 때문이었다. 그렇게 했을 때 매출은 한 달을 삼십 일로 계산해 육백만 원에 이르렀다.


이제 문제는 시장이었다. 이 떡을 그대로 엄마처럼 이고 나가서 밖에서 판다는 생각을 나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내가 노리는 것은 가상세계였다. 메타버스라는 그 세계에서 나는 떡을 팔았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설명한 모든 과정은 현실의 과정이었으되 나는 그것을 메타버스의 한 아이템으로 구축했다. 메타버스에 빠진 이들에겐 ‘월광’이라는 그럴싸한 판타지적 단어가 적중했다. 떡과 전혀 친하게 지내지 않은 그들 세대에게 낯선 먹거리라는 신선함도 작용했다.


예상이 맞아떨어져 메타버스 공간에서 내 떡을 사는 이들은 매일매일 나타났다. 나는 그것을 가상화폐로 벌어 현실에 존재하는 지폐로 환전해 내 은행계좌로 찍어냈다. 무엇이 다를까 싶었다. 내 스마트폰 속 은행 계좌에 있는 숫자 역시 환상에 불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메타버스와 다를 바 없는 그 안에서 돈을 찍어내는 것처럼 달빛을 그러모아 꿀을 바른 떡을 찍어냈다. 어찌 보면 지폐라는 그것이 만들어낸 환상의 세계에 사람들은 한 치의 의심 없이 경도되어 더 많은 지폐를 모으기 위해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한 차원 더 가상의 세계인 메타버스에서 떡을 팔아 한 발자국만 더 밖으로 나오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내가 보기엔 전부 그랬다. 현실이 가상이었고 가상이 현실이었다. 나보다 더 어린 세대들은 그것의 경계에서 한 발 더 가상으로 들어간 것뿐이었고 그것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 확실히 증명되었다. 세상은 가상으로 더욱 빠르게 흘러갔고 나의 세대와 나보다 더 어린 세대는 점점 더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돌아보면 엄마의 세대 역시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지폐에 아무 의심이 없었다. 오로지 그것이 좀 더 있으면 삶이 더 나아지리라는 환상을 품고 개미처럼 일했다. 마치 평생 먹어보지 못할 저 나무 위에 있는 사과의 맛이 엄청날 것이라는 추측 속에 말이다. 정작 그 사과가 왜 거기 있는지 혹은 정말로 실재하는 사과인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 걸어둔 그림은 아닌 것인지 의심하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


역사책을 뒤져보면 이따금 그런 의심을 품는 이들이 나타나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그 사과에 대해 아는 이들이 짜 놓은 스토리와 그럴싸한 복잡다단한 이론 설명이라는 덫에 가로막혀 의구심을 지속하지 못하고 사라졌다.


사실상 가상의 세계는 이미 금 보유를 훨씬 뛰어넘는 규모의 지폐가 나왔을 때부터 탄생했고 그걸 깨달은 이들은 그 지폐엔 아무것도 없고 거기서 한 발 자국 나와 보아야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일찍이 알았다. 거기서 나와 부를 축적한 이들은 실물의 게임에서 이긴 자들이었고 심리의 게임에서 승리한 자들이었다. 심지어 그 모든 게임은 이 사실을 깨달은 이들만의 게임이었다.


그랬다. 내가 보기엔 그랬다. 엄마 머리 위에 있던 달빛을 그러모아 만든 떡과 내가 만든 월광을 머금어 꿀을 끌어당긴 떡은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에겐 현실과 다른 ‘가상 세계’가 존재했고 누군가에겐 현실이 없는 대신 존재하는 ‘가상 현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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