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원하시는 조건입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를 알아보는 방법
내게도 도시를 떠나 교외의 한적한 곳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다. 교외 지역의 부유한 자들을 선망하는 속물근성에 젖어 있던 건 아니다. 그저 자연 친화적인 느긋한 삶이 그리웠다. 갑갑한 아파트를 벗어난 인생의 2막을 꿈꿔 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은퇴 후의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는 교양 있는 사람들. 아침저녁으로 로트와일러와 산책하며 이웃과 인사를 나누는 호젓한 삶에는 텃밭에서 야채를 기르고 벽난로에 장작을 넣는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다.
언제까지 꿈만 꿀 수는 없었다. 난 전원주택을 알아보기 위해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들렀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키보드를 열심히 두들기던 한 중년 남성이 모니터에서 얼굴을 반쯤 내민 채 내게 인사했다. 그러면서도 잠시라도 놓치면 안 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듯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벽에 걸린 지도를 구경하고 있던 나를 탁자 앞 의자로 이끈 후 냉장고에서 음료를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무슨 일로 왔는지 물었다. 내가 전원주택을 알아보러 왔다고 하자 조금 놀란 눈치였다.
"엄청 젊어 보이셔서 당연히 아파트를 보러 오신 줄 알았는데, 전원주택이라. 사실, 젊을수록 좋은 게 전원주택입니다."
중개사는 내게 어떤 전원주택을 찾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내가 원하는 조건을 솔직하게 말했다. 집에는 적당한 크기의 마당과 텃밭이 있어야 하고, 걸어 다닐 만한 거리에 학교와 마트가 있어야 하며, 주차가 가능해야 하고, 대중교통이 편리하며, 외부 경관이 수려한데 '나 홀로 집'은 아닌 곳 말이다. 집 주위에 도축장이나 묘지, 교도소 같은 혐오 시설이 없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원하는 전원주택은 이중환이 살아 돌아와도 찾아낼 수 없다고 말이다. 하지만 원하는 조건을 묻는데 지레 겁을 먹고 몇 가지를 뺄 이유는 없었다. 전원주택에 방문하려면 차를 타고 한참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내가 원하는 조건을 정확하게 말해 두면 헛걸음을 하지 않아도 된다. 학교와 마트가 가깝더라도 집 거실 창을 다른 집 뒷벽이 가로막고 있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경치가 좋고 주차도 가능하며 집 구조도 훌륭하지만, 집에서 5m 떨어진 곳에 공동묘지가 있으면 아무래도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은 나도 조건을 말하면서도 과연 그런 집이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중개사는 마침 그런 집이 매물로 나와 있다고 했다.
"정말 운이 좋으십니다. 며칠 전에 나온 집이 있는데 딱 원하시는 조건입니다."
우리는 한 시간가량 차를 몰아 교외의 한 주택에 도착했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갓길에 차를 댄 뒤 포치를 갖춘 대문을 지나 잔디가 깔린 마당으로 들어갔다.
"어때요, 예쁘죠? 풍경도 얼마나 멋져요. 이만한 집 구하기 어렵습니다. 머뭇거리면 다른 사람이 바로 계약해버리는 집이에요."
그 집은 미국의 전형적인 교외 주택과 비슷했다. 경량철골 구조에 시멘트 사이딩을 붙이고 모임지붕 위에 아스팔트 싱글을 올린 이층집이었다. 난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가 있는지 물었다. 중개사는 차로 10분밖에 안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초등학교가 있다고 답했다. 도보로 갈 수 있는 학교를 원한다고 말하자 중개사는 전원주택은 차로 이동하는 게 기본이며 도보로 갈 수 있는 학교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또 학교 근처에 있는 주택은 마을 안에 있어 전원주택의 느낌이 전혀 안 나니, 그럴 바엔 차라리 도시에 사는 게 낫다고 했다. 나는 마당이 생각보다 작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마당은 작을수록 좋다고 했다. 마당에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 때문에 전원생활을 포기하고 떠난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이었다. 며칠만 놔둬도 잡초가 무릎까지 자라는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그 공포를 모른다고 했다. 난 집 옆으로 보이는 거대한 송전탑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는 거실에서 보이지 않으니 괜찮다고 대꾸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아무런 해도 안 끼치는 저 철탑 덕분에 주택 가격이 저렴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난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집 바로 뒤에 무덤이 있는 건 너무한 게 아니냐고 따졌다. 그러자 중개사는 무덤은 곧 그 땅이 명당이라는 증거라고 반박했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은 좋은 묫자리를 찾고자 오랫동안 땅을 보러 다녔으며, 한 번 묫자리를 정했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이장할 만큼 정성을 들였으니, 무덤이야말로 그 땅에 좋은 기운이 흐르는 증거라고 했다. 게다가 우리는 결국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데도 평소 그를 잊고 지내는데, 이렇게 집 가까이에 무덤이 있으면 볼 때마다 죽음을 떠올리며 우리의 자만심을 줄일 수 있으니 정말 좋은 일이라 했다. 그러면서도 무덤은 집 뒤쪽에 있어 보이지 않으니 신경 쓸 이유가 없다고 했다.
중개사는 나를 집 안으로 이끌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마당 끝에 가림막처럼 세워져 있던 관목을 손으로 젖힌 뒤 그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그쪽엔 거대한 철제 건물이 여럿 모여 있었는데 굴뚝으로 흰 연기를 내뿜는 것도 있었다. 내가 저게 뭐냐고 묻자 그는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산업단지인데요, 저 단지 들어오고 이 근처 땅값이 많이 올랐어요. 이 집도 산업단지가 들어온 뒤에 많이 올랐죠. 일자리가 늘어나니까 지역 경제에 도움도 되고요. 혹시 직장이 저쪽이라면 정말 최고의 선택입니다. 저기 직장인들이 이쪽 전원주택을 정말 많이 알아보고 있어요. 전원생활 하면서 직장이 가깝다는 건 정말 누리기 힘든 축복입니다. 걱정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저 산업단지에는 친환경 업체만 모여 있어서 매연 같은 건 절대 못 내뿜습니다. 그런 업체는 서류 전형에서 탈락이에요."
나는 중개사의 도움에도 바로 결정을 하지 못했다. 아내와 함께 살 집이니 아내도 집을 보아야 했다. 난 조만간 아내와 함께 다시 방문하겠다고 말한 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뒤로 일이 바빠져 좀처럼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난 아내에게 혼자라도 가보는 게 어떠냐고 물었고, 아내는 혼자인 건 전혀 문제가 안 된다는 듯 선선히 갔다 오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는 내가 봤던 것과 같은 집을 봐야 한다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 중개사는 아내를 완전히 새로운 손님으로 착각하여 아내에게 다른 집을 보여주었다. 아내의 말에 따르면 그 전원주택은 시내에서 가까워 학교에 걸어갈 수 있었고 마당이 넓었으며 주변에 송전탑이나 묘지 같은 시설도 없었다.
아내는 내게 들은 바가 있었기에 주택 마당이 너무 넓어서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중개사에게 말했다. 그런데 중개사는 전원주택의 즐거움은 마당 크기에 비례하는데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시냐며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마당이 좁으면 보기에도 안 좋고 놀기에도 안 좋으며 나무를 많이 심을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 또 그는 자동으로 잔디를 깎아주는 기계가 있으니 마당이 넓어도 잡초 관리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아내가 주택이 시내에 있어서 전원주택의 느낌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중개사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시내에 있는 전원주택은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라고 타이르듯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시내에 있어서 생활이 편리한데 마당까지 넓은 전원주택은 삼대에 걸쳐 복을 쌓아야 구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아내가 가까운 곳에 산업단지 같은 일자리가 없어 아쉽다고 하자, 그는 산업단지 주변은 공해 때문에 전원주택을 찾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아내는 친환경 산업단지는 괜찮지 않으냐 물었다. 그러자 그는 산업단지가 아무리 친환경을 표방한다고 해도 서류상으로만 그럴 뿐 슬쩍 업종을 바꾸는 경우가 많아 소용없다고 했다. 그는 아프리카를 탈출한 난민들도 그 주변에는 정착하지 않을 거라고 주장했다. 아내가 죽음을 성찰할 수 있도록 주위에 무덤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중개사는 아내를 미친 사람 보듯 쳐다보았다. 집에 돌아온 아내는 나 때문에 중개사에게 바보 취급당했다며 일주일째 내게 말을 걸지 않고 있다.
며칠 뒤 중개사가 전원주택을 구매할 건지 물어 왔다. 그래서 나는 이제 비인격적이라 비난받는 도시의 삭막한 거리에서 오히려 해방감과 그에 수반하는 자유를 느끼게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교외의 전통 공동체는 집단을 강조하며 개인성을 말살시켰지만, 도시는 개인의 특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을 또 다른 소외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었다고 곁들이며 말이다.
"그래서 전원주택에서 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렇게 일일이 따지고 재는 마인드로는 평생 전원생활을 하지 못할 거라 말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이 부동산 중개업자는 '피할 수 있는 상황'과 '피할 수 없어서 좋게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혼동하고 있었다. 남편에게 두들겨 맞아 우울증에 걸린 아내에게 "그런 폭력적인 남자와는 이혼하는 게 제일 좋다"라는 조언을 해줄 수 있다. 그런데 아이들이나 경제 문제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같이 살아야 한다면, "난 아무렇지 않다, 이런 거로는 날 어쩌지 못한다, 더 때려봐라."라는 식의 기골이 필요하다고 조언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이혼할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전제 조건 없이 그저 "네가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해."라고만 말한다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부동산 중개업자의 태도도 꼭 그랬다. 그는 마치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쳐 있는 것처럼 모든 일을 설득하려 들었다. 음식에 곰팡이가 핀 걸 보고 다른 걸 먹으라고 권유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음식도 없어서 못 먹는 사람들이 있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어야 한다는 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동산 중개업자를 알아보는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이 낙천적이길 바라는 자, 그가 바로 부동산 중개업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