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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Jun 13. 2024

[창작소설] 나도 엄마 사랑받고 싶어 (1)

1화 - 오후 4시

"다정아 너 아까부터 전화 오는 거 아니야?"

​소율이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마음속에 콕 들어왔다.

"안 받아도 돼."

​심란한 마음을 뒤집고 싶다는 듯이 핸드폰을 엎어버렸다.

​유치원 때부터 함께 지낸 소율, 하빈이와 함께 공부 하고 있었다.
셋 중 집이 가장 넓은 하빈이네로 주말마다 모였다.
고등학교 입학 후 첫 중간고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셋이 같은 고등학교에 입학 했다면 지금보다 더 자주 만났을 것이다.
아니, 나만 소율이와 하빈이가 입학한 고등학교에 갔다면 평일에 혼자 방 안에 틀어박혀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친구들과 함께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섯 살 되던 해 작은 전파사를 운영하던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없는 살림에 무리해서 차린 전파사는 엄마에게 어마어마한 빚으로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농사에 집안 살림만 하느라 국민학교도 졸업 못 한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엄마는 먹고 살기 위해 손에 잡히는 대로 일을 했다.
아직도 빚을 못 갚아 허덕이고 있는 엄마를 보니 공부할 마음이 사라졌다.
빨리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친구들과 자주 못 만나는 것은 아쉽지만 빠른 취업을 위해서 옆 동네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해야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학교 공부만 열심히 하고 있다.

다행히 학원에 가지 않아도 높은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학교에는 공부 하는 애들이 별로 없었다.

뒤집어 놓았던 핸드폰이 진동으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 전화 아니야? 받아 봐."

이번에는 하빈이가 걱정스럽게 얘기했다.
마음 편히 공부하기에는 틀린 것 같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빠르게 핸드폰 볼륨 버튼을 눌렀다.

"최다정! 너 지금 어디야?"

통화 볼륨을 줄인다고 줄었지만, 엄마의 목소리가 더 빨랐다.
조용한 방안에 엄마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너 지금 몇 신데 안 기어들어 오는 거야?"

"아직 5시도 안 됐어!"

내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나를 향한 엄마의 집착이 처음은 아니지만 매번 이럴 때마다 화가 났다.

연락만 되면 괜찮다는 소율이와 하빈이의 부모님과 달리 우리 엄마는 오후 4시만 되어도 집에 들어오라고 핸드폰에 불이 나도록 전화했다.
친구들과 놀 때 4시가 되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엄마한테 전화 올 때가 되었는데.
전화해서 또 소리 지르겠지.

광기에 가까운 엄마의 집착이 무서웠다.

"빨리 집에 들어와!"

마지막 엄마의 외침을 끝으로 통화는 종료되었다.

"다정아 이제 집에 가자."

소율이가 가방을 챙기며 말했다.

"내가 아파트 단지 입구까지 데려다줄게."

또 이렇게 친구들과 헤어지게 되었다.
매번 친구들은 듣지 않아도 될 엄마의 잔소리를 같이 듣고 어정쩡하게 헤어졌다.
그럴 때마다 짜증 한 번 안 내는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미안해."

"그런 말 하지 마. 빨리 가자. 엄마 기다리시겠다."

미안함에 손가락만 꼼지락거리고 있자 소율이가 내 짐을 챙겨 주었다.
셋은 말 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얘들아 고마워."

착잡한 마음을 숨기며 애써 웃었다.

"실은 우리도 다섯 시까지 학원 보충 수업 가야 해서."

"그렇구나."

난처한 얼굴의 친구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정아. 톡 할게. 잘 가."

서로의 팔짱을 끼고 사라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고 울컥했다.
친구들과 멀어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작년이었다면 나도 친구들과 손잡고 학원에 함께 갔을 것이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학원을 그만두었다.

'내가 엄마 힘들까 봐 학원도 포기했는데.'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입술을 깨물고 빈 주먹을 꽉 쥐었다.

빠른 걸음으로 1단지를 벗어나 우리 집이 있는 2단지로 들어갔다.
고층과 다양한 평수로 이루어진 1단지에 비해 저층 임대아파트만 있는 2단지는 다른 세상 같았다.

친구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서 그런가 평소에 긍정적으로 넘길 수 있었던 것들도 다 짜증 났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엘리베이터도 없다.
계단을 쾅쾅거리며 5층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주머니에서 거칠게 열쇠를 꺼냈다.

요즘 누가 현관문을 열쇠로 여냐고.
하빈이네는 비밀번호 누르는 도어락인데.

철컥.

현관문을 열자, 음식이 차려진 접이식 밥상이 보였다.
부엌 겸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밥상과 엄마는 내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하빈이네는 거실에 소파도 있는데.
우리 집은 밥상 놓기도 좁으니.

불만이 마음속에 계속 쌓였다.
밥상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대충 가방을 벗어놓고 철퍼덕 앉았다.

내가 없으면 혼자 물에 밥 말아 먹을 엄마가 신경 쓰였다.

"빨리 먹어."

"왜."

생각지도 못한 불퉁한 목소리가 튀어나와 움찔했다.
엄마가 화를 낼까 봐 힐끗 엄마의 모습을 살폈다.
급한 일이 있는지 엄마는 식사에만 집중했다.

"요 앞 순댓국집에 알바하러 가야 해."

"주말엔 좀 쉬지."

"돈 벌 수 있을 때 벌어야지."

또 돈 이야기.
언제쯤 엄마와 돈 걱정 없이 살 수 있을까.

탁.
숟가락을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김치를 주워 먹던 엄마가 눈을 치뜨고 쳐다보았다.

"헛짓거리 하지 말고 빨리 밥이나 먹어."

"엄마나 빨리 먹고 가. 내가 치울 테니까."

"너 공부해야지. 시험 얼마 안 남았다며."

"그래서 친구들하고 공부하고 있었잖아. 왜 자꾸 전화하고 난리야."

공부 얘기에 가슴이 또 뜨거워졌다.

"너 맨날 애들 만나느라고 늦게 들어오잖아."

"그게 무슨 말이야. 세상에 4시가 통금 시간인 고등학생이 어딨어."

탁.
엄마도 숟가락을 내려놓고 나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너 걔들이 죽으라면 죽을 거야? 4시든 5시든 우리 집 통금시간은 오후 4시야."

우리 집이라고 해봤자 나와 엄마 뿐인데 무슨 의미가 있나.

"거기서 그 얘기가 왜 나와."

퉤.
입안에 남아 있던 음식물을 밥상에 모두 뱉어버렸다.

"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이고. 내가 너 가졌을 때 낳질 말았어야 했는데."

엄마가 가슴을 탁탁 치며 또 같은 말을 한다.

"왜! 시골에 놀러 온 아빠 손을 뿌리쳤어야 했다고 대성통곡이라고 해야지."

엄마와 싸울 때면 항상 등장하는 레퍼토리.
지긋지긋하다.

스무 살까지도 계속 농사일만 했던 엄마는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다.

매년 시골 동네 계곡으로 외지인들이 놀러 왔는데 그중에 아빠도 있었다.

더운 낮엔 밭일도 못 하니 엄마는 친구들하고 계곡에 놀러 갔고 구미에서 공장 동기들하고 놀러 온 아빠를 만났다.

한순간에 서로에게 빠져버린 엄마와 아빠는 혼전 임신으로 나를 낳았고 엄마는 그 뒤로 외가 쪽 식구들과 연을 끊었다.
외할머니가 혼전 임신한 딸이 동네 창피하다며 집 근처엔 얼씬도 못 하게 했다고 한다.

"너 엄마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엄마가 밥알을 튀기며 소리쳤다.

"그래. 내가 사라지면 되는 거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며 외쳤다.
일어나면서 무릎으로 밥상을 쳐서 컵이 엎어졌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엄마는 엎어진 컵에서 나와 바닥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나는 뒤돌아 발에 들어가는 아무 신발이나 신고 뛰쳐나갔다.

젠장.
짝짝이로 신었다.
왼쪽 발에 엄마의 슬리퍼가 보였다.

엄마 거랑 헷갈리니까 다른 모양으로 사달라고 했는데.
딸하고 커플 슬리퍼 신고 싶다며 사 온 유명 브랜드 짝퉁 슬리퍼.

나보다 발이 큰 엄마의 슬리퍼를 타박거리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쾅.
1층에 다다랐을 때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최다정! 너 일로 안 와?"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온 힘을 다해 아파트 단지 입구로 뛰어갔다.
지긋지긋한 시골을 벗어나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이 이랬을까.
매일 돈에 끌려다니는 생활이 지긋지긋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 아까 건너온 2차선 도로가 보였다.

"너 엄마 말 안 듣지!"

벌써 엄마가 코 앞까지 쫓아왔다.

빨리 켜져라. 제발.

오늘따라 횡단보도의 신호가 고장 난 것처럼 안 바뀐다.
발을 동동거리다가 초록색으로 바뀌자마자 건너편으로 뛰었다.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이 온몸을 뒤덮었다.
신호등을 향해 있던 시선은 어느새 하늘 위 먹구름을 향해 있었다.

곧 비가 오려나.
우리 엄마 우산은 가지고 나왔나.

엄마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리고 얼굴 위로 차가운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그것이 비인지 눈물인지 구분하기도 전에 모든 것이 어둠 속에 잠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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