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나도 엄마 사랑받고 싶어(2)
2화 - 내 이름은 김다롱
차가운 기운에 눈이 번쩍 떠졌다.
세찬 빗줄기가 얼굴을 때렸다.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거지.
시끄러운 도시의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물기를 잔뜩 머금은 흙냄새가 났다.
흙냄새?
아파트 화단에서 나는 냄새인가?
"다롱아! 어딨어?"
멀리서 어떤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롱아! 얘가 어디 간 거야. 비도 많이 오는데."
애타게 찾는 목소리에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지만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다롱아. 밥 먹어야지. 빨리 언니한테 와."
근데 왜 저 아이는 죽은 다롱이를 애타게 부르는 거지?
김다롱.
나이 추정 불가.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믹스견.
일명 똥개.
엄마가 어릴 때 키우던 강아지다.
학교에 다니지 못해 친구가 많이 없던 엄마는 강아지 다롱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밭일을 가거나 집안일을 할 때도 다롱이가 옆에 있었다.
아이 목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내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었다.
꼬리?
"왈왈!"
"다롱아!"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작은 여자아이가 달려와 나를 번쩍 들어 안았다.
"다롱아.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아."
"왈왈왈."
지금 내 입에서 무슨 소리가 나온 거야?
개소리?
가까이에서 본 아이 얼굴에서 엄마의 눈, 코, 입을 발견했다.
"왜 비 맞고 누워 있어. 감기 들게. 빨리 밥 먹자. 언니가 고기 몇 점 엄마 몰래 챙겨놨어."
아이는 나를 안은 채 농기구가 줄 서 있는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구석에 놓인 개집 앞에 나를 내려놓았다.
나는 내 의지와는 다르게 발을 구르며 꼬리를 흔들었다.
"다롱이 착하지? 어디 가지 말고 여기서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우산 쓴 아이는 집 뒤편으로 달려갔다가 금방 돌아왔다.
아이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들려 있었다.
빗속을 뚫고 맛있는 냄새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냄비가 가까워질수록 더 신나게 꼬리가 흔들렸다.
여전히 방정맞은 발과 꼬리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다롱아 맛있게 먹어."
아이가 양은 냄비를 내려놓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달려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코를 막고 도망갔을 텐데 지금은 너무 맛있다.
"다롱아 천천히 먹어."
아이가 내 등을 따뜻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맛있는 밥도 먹고 사랑이 담긴 손길에 기분이 좋아졌다.
머리 위에서 웃고 있는 아이의 기척이 느껴졌다.
"옥정아. 김옥정! 이 가시나가 어딜 간 거야."
집안에서 몸빼 바지를 입은 중년 여자가 슬리퍼를 끌며 나왔다.
"옥정아! 얘가 밥 먹다 말고 어디 갔어. 진짜."
우산은 안 가지고 나왔는지 처마 밑에서 소리만 치고 있었다.
"엄마, 나 여기 있어!"
"야! 너 빨리 안 와 ? 설거지해야지. 그새 개새끼한테 가 있어?"
쾅!
문 닫히는 소리에 놀라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
엄마 화낼 때와 비슷했다.
"다롱아 괜찮아. 밥 먹고 있어. 언니 설거지하고 금방 올게."
나는 다시 냄비에 얼굴을 박았다.
"영식이 오빠랑 영철이는 놀고 있던데. 나도 쉬고 싶다."
아이는 혼잣말을 남기고 집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냄비 속 떠다니는 고기를 씹으며 깨달았다.
횡단보도에서 사고가 난 동시에 나는 아이의 과거로 돌아왔다.
왜 하필 사람도 아닌 동물인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애완견 김다롱이 되었다.
그러니까 저기 현관 앞에서 나를 보며 환하게 웃는 여자아이는 어린 시절의 우리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