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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Jun 25. 2024

[창작소설] 나도 엄마 사랑받고 싶어(3)

3화 - 옥정아 학교 가자

생각보다 강아지의 몸은 불편하지 않았다.
종일 아이의 모습을 한 엄마를 따라다니다 밥 먹고 뒹굴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매일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 받다가 아무 생각 없이 뛰어다니니 정말 좋았다.
하지만 한량 같은 생활도 익숙해지니 불편한 진실이 눈에 들어왔다.

"옥정아. 김옥정! 얘가 또 어디 간 거야. 더 더워지기 전에 밭에 가야 하는데."

"엄마, 나 설거지하고 있었어."

"너는 밥 다 먹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설거지하고 있어. 빨리 밭에 갈 준비나 해."

"엄마, 영식이 오빠랑 같이 가면 안 돼?"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늬 오빠는 공부해야지. 가긴 어딜 가."

"그럼, 영철이라도."

"너 자꾸 헛소리할래? 아직 어린애가 무슨 밭일을 한다, 그래. 쉰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나와!"

엄마의 엄마, 그러니까 나의 외할머니는 엄청난 독설가였다.

아니, 아직 초등학생인 아이한테 소처럼 농사일시키다니.
심지어 엄마네 소도 강아지가 된 나처럼 놀고먹고 있는데.

"왈왈!"

너무한 거 아니냐고.

"왈왈왈!"

"이 개새끼가 아침부터 왜 지랄이야. 정신 사납게."

억.
할머니가 내 옆구리를 발로 차버렸다.
낑낑거리는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문을 쾅 닫으며 나가셨다.

"다롱아 괜찮아?"

엄마는 잽싸게 뛰어와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젖어있어 가슴이 찡했다.

"많이 아팠지?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

내 등에 얼굴을 묻고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처음에는 적응되지 않았다.
매일 소리치고 잔소리만 하던 엄마였는데 이렇게 나를 챙겨주고 걱정해 주는 모습이 낯설었다.

누군가의 조건 없는 사랑을 받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전의 엄마와 나는 앙숙처럼 싸우기에 바빴는데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었다.

문제는 무자비한 할머니의 행동이었다.
예전 엄마가 나한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할머니와 비슷한 폭언은 많이 했었다.
날카로운 할머니의 모습에서 엄마가 슬쩍슬쩍 보이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나중에 딸 낳으면 절대 일 안 시킬 거야."

엄마가 내 등에 코를 박고 속삭였다.

맞다.
엄마는 절대 나에게 집안일을 시키지 않았다.
나중에 시집가면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고 절대 못 하게 했다.

내가 나중에 아무것도 못 해서 시부모님한테 혼나면 어떡하냐고 엄마한테 물은 적이 있다.
엄마는 분노를 담아 소리쳤었다.

'시부모가 그러면 당장 짐 싸 들고 엄마한테 와! 요즘엔 남자들도 살림하는 세상인데 어디 며느리만 구박해.'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분노했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내 생각 많이 했었구나.

"옥정아. 학교 가자!"

각진 빨간색 가방을 멘 양 갈래 꼬마 소녀가 대문 밖에서 소리쳤다.
엄마는 나를 안고 반가운 목소리로 달려 나갔다.

"영숙아!"​

"옥정아 오늘은 학교 갈 수 있어?"

"나 오늘 고추밭 매러 가야 하는데...."

나는 쓰다듬던 엄마의 손길이 느려졌다.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또 일하러 가는구나. 알겠어. 나갈게, 안녕."

"영숙아 잘 가."

힘없는 엄마의 인사는 달그락거리며 달려가는 가방 소리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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