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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Sep 25. 2024

[창작소설] 나도 엄마 사랑받고 싶어(5)

5화 - 턱에서 흐르는 눈물

엄마는 할머니의 눈치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다음 주에도 밭에 나와봐야 하는데…."

"아, 바쁘구나.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냐! 엄마한테 물어볼게."

엄마는 당황했는지 양손을 앞으로 흔들며 말했다.
금방이라도 현우 오빠가 자전거를 타고 도망갈 듯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려. 무슨 일인데 옥정이한테 시간 있는지 물어?"

어느새 할머니가 땀을 닦으며 나무 그늘 안으로 들어왔다.
호미질하면서 엄마와 현우 오빠의 대화를 다 들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저희 집이 다음 주부터 담뱃잎 따는데 옥정이가 도와줄 수 있나 해서요."

현우 오빠가 웃으며 할머니께 인사했다.

파사삭.
엄마의 희망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처럼 엄마도 현우 오빠가 데이트 신청하는 줄 알았던 것 같다.

햇빛에 비친 현우 오빠의 얼굴은 환했고 그늘 아래 있는 엄마의 얼굴은 어두웠다.

"옥정이 일하느라 힘든가 보구나."

엄마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지자, 현우 오빠는 당황했다.

"우리 엄마가 품삯도 준다고 해서 옥정이한테 제일 먼저 알려준 거야."
​​
현우 오빠는 인심 쓴다는 말투로 말했다.
엄마는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는지 입을 한일자로 굳게 닫았다.

"그려. 다음 주에 옥정이 다녀와."

"감사합니다. 그럼, 옥정아 다음 주에 보자."

할머니의 승낙이 떨어지자, 현우 오빠는 자전거 패달을 밟으며 쌩하니 달려 나갔다.
그의 뒷모습은 시내로 놀러 갈 생각에 신나 보였다.

엄마는 멀어지는 현우 오빠의 뒷모습을 보며 손을 흔들었다.
이미 저만치 달아난 현우 오빠는 엄마의 인사를 볼 수 없었다.

"품삯은 네가 가져라."

여전히 굳어있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할머니가 툭 내뱉었다.

"정말?"

엄마의 얼굴이 금방 밝아졌다.

"대신 한 달간 생활비 없으니 그 돈으로 반찬거리 사."

이번엔 엄마의 얼굴에 심술이 차올랐다.
땅을 쿵쿵 밟으며 다시 고추밭으로 들어갔다.

"그래 가지고 땅이 꺼지냐. 으이그 저 승질머리 하고는."

할머니도 신경질적으로 바지를 털며 밭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용히 엄마 곁으로 갔다.
나무 그늘을 벗어나자마자 공기가 뜨거워졌다.

"헥헥."

눈치 없는 혀는 자꾸만 늘어졌다.

엄마는 말없이 호미질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엄마는 표정을 알 수 없었다.

엄마가 현우 오빠 좋아하는 거 같은데.
엄마 성격에 분명 상처받았을 거야.
게다가 할머니가 기름을 부었으니.

그때 엄마의 턱에서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엄마 지금 울어?!
다 찢어진 청바지 입고 다니는 오빠가 뭐가 멋있다고.

"왈!"

엄마는 그제야 내가 옆에 있었다는 걸 알았다는 듯이 내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 땀이었구나.

엄마는 목에 두른 수건을 들어 흘러내리는 땀을 닦았다.

"다롱아, 더운데 저리 가."

엄마도 더우면서 왜 자꾸 나만 쉬라고 그래.

나는 일부러 엄마 옆으로 더 다가갔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더우면 공부 안 된다고 내 방에만 창문형 에어컨을 설치해 주셨다.

본인은 언제 고장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낡은 선풍기만 고집했다.
행여나 덜덜거리는 선풍기가 공부에 방해될까 안방 문을 꼭 닫고 여름을 보냈다.

시원한 벽걸이 에어컨이 아니라서 미안하다고.
저렴한 창문형 에어컨밖에 못 사줘서 미안하다고.
내년 여름엔 꼭 좋은 에어컨으로 바꿔주겠다고.

공부하라는 잔소리 뒤에 툭툭 내뱉던 엄마의 말이 이제야 기억났다.
엄마 덕분에 매년 여름을 시원하게 보냈다.

엄마는 문 닫힌 방안에서 지금처럼 땀 흘리고 계셨겠지?
지금 내가 오해한 것처럼 눈물은 아니었겠지?

아니었으면 좋겠다.

"다롱아."

엄마는 다시 호미질을 시작했다.

퍽퍽.

"나도 현우 오빠처럼 멋있는 청바지 입고 시내로 놀러 가고 싶어."

퍽퍽.

"다 늘어난 고무줄 바지 말고."

퍽퍽.

마치 엄마의 호미질이 내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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