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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음미숙 Oct 02. 2024

[창작소설] 나도 엄마 사랑받고 싶어 (6)

6화 - 흔들리는 엄마 손

"옥정아, 안 힘드니?



"괜찮아요."



엄마는 맨 아래 있는 담뱃잎을 따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나는 오늘도 껌딱지처럼 엄마 옆에 붙어있었다.



"다롱아, 저리 가 있어."



엄마는 또 나를 나무 그늘로 밀어냈다.


나는 굴하지 않고 엄마 옆에서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어린 엄마의 모습보다 좀 더 큰 내가 도와주고 싶은데 강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답답했다.


대신 꼬리를 흔들며 엄마에게 응원을 보냈다.



"다롱아, 언니 속상해. 너 털에 까만 거 다 묻잖아."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잖아.



줄기와 잎에서 나오는 끈적끈적한 담배진은 온몸을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잘 닦이지도 않는지 세탁한 엄마의 작업복은 여전히 거무튀튀했다.



"빨리 저리 가."



엄마는 주변에서 작업하는 아줌마들한테 피해 갈까 봐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손은 쉬지도 않고 담뱃잎을 땄다.



과거에서 지켜본 엄마의 식사는 너무 형편없었다.



하루 종일 밭일만 하는 할머니를 대신해 엄마가 청소, 빨래, 식사 준비 같은 집안일을 모두 맡았다.



집안일을 다하고 나면 지금처럼 품앗이하러 다니거나 할머니를 도와 농사를 지어야 했다.



'남자는 집안의 기둥이다.'



항상 할머니가 외치는 말이다.



덕분에 오빠나 남동생은 집안일, 밭일 안 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반대로 종일 일만 한 엄마는 저녁이 되면 녹초가 되었다.


밥 먹을 기운도 없어 부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물에 만 밥을 호로록 마시는 걸로 식사를 끝냈다.  



"옥정이는 참 손이 야무져."



엄마 가까이에서 담뱃잎을 따던 아줌마가 허리를 펴며 말했다.



"아이고, 허리야. 맞아, 우리 영숙이가 옥정이 반만 따라 가면 좋겠다."



엄마 친구 영숙 엄마도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참 옥정아. 새벽에 어디 가길래 그렇게 급하게 갔었어?"



"네, 감자밭에 거름 주러 갔었어요."



엄마가 숙였던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햇볕에 익은 빨간 얼굴이 지쳐 보였다.



"세상에. 너희 엄마, 아빠는 뭐하고? 오빠랑 동생은?"



"엄마, 아빠는 고추밭에 가셨고, 오빠랑 영철이는 자고 있었어요."



어린 시절 엄마도 거짓말 못 하는 아이였다.


어른들의 질문에 숨기지 않고 모두 다 말하고 있었다.



"쯧쯧, 불쌍한 것.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댄데 어린애한테 농사일을 시켜. 옥정아 네가 고생이 많다."



"아이고, 영숙 엄마도 참."



옆에 아줌마가 영숙 엄마의 옆구리를 찔렀다.


눈치 빠른 엄마도 이제 알았을 것이다.



아줌마들이 할머니 욕을 한다는 것을.


자신이 지금 동정받고 있다는 것을.



엄마는 어색하게 웃으며 쭈그려 앉았다.


머리에 뒤집어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다시 담뱃잎을 따기 시작했다.



한동안 엄마는 일어나지 않았다.


바싹 마른 땅 위로 굵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엄마 울어?



나는 억지로 엄마 품에 파고들었다.



"얘가 왜 이래. 자꾸 귀찮게 할래?"



여전히 낮은 엄마의 목소리는 기운이 없었다.


고개를 들어 엄마 얼굴을 바라보았다.



굵은 물방울은 땀이었다.


자꾸 지난번부터 땀을 눈물로 오해하고 있네.



다시 엄마 품에서 벗어나 옆에 얌전히 앉았다.


더 이상 엄마를 방해하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 때문에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밭 저편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들렸다.



"아니, 이거 누가 딴 거야. 아직 익지도 않은 시퍼런걸. 빳빳한 거 누가 땄어!"



엄마는 반사적으로 어깨를 움찔했다.



작업하던 아줌마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몸집이 크고 퉁퉁한 아줌마가 새파란 담뱃잎을 흔들고 있었다.


엄마가 따고 있는 연한 담뱃잎과 색깔이 달랐다.



"대체 안 익은 걸 누가 딴 거야. 이 귀한걸. 자기 밭 아니라고 막 해도 되는 거야!"



퉁퉁한 아줌마는 허리를 숙여 잔뜩 쌓여 있는 담뱃잎을 흩트려 놓았다.



"현우 엄마 진정해. 말이 좀 심하네."



"그래. 현우 엄마 흥분했어."



일을 하던 아줌마들이 다 한마디씩 했다.



"아니, 이게 다 돈인데 진정 안 하게 생겼어?"



현우 엄마는 더 흥분해서 날뛰었다.



밭 한쪽에 쌓여있는 담뱃잎들은 누가 땄는지 알 수 없었다.


다들 적당량을 채취하면 밭 저편에 순서대로 쌓아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이 년 담뱃잎 따는 게 아닌데 안 익은 걸 누가 따."



근거 없이 오해받아 억울한 영숙 엄마가 더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럼 영숙 엄마는 지금 경험 많은 자기들은 잘못 없고 경험 적은 옥정이가 그랬다는 거야?"



나는 엄마의 이름이 거론되자 제일 먼저 엄마를 올려다보았다.


엄마의 마주 잡은 양손이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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