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나도 엄마 사랑받고 싶어(4)
4화 - 데이트 신청?
"더운데 저리 가 있어."
엄마가 땀을 닦으며 나무 그늘을 가리켰다.
"헥헥."
나는 혀를 있는 대로 내밀고 엄마 옆에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햇빛은 너무나 강렬했다.
엄마는 온몸으로 날카로운 햇빛을 받으며 풀을 뽑고 있었다.
얼굴을 가린 수건과 낡은 밀짚모자로는 더위를 막을 수 없었다.
"다롱아 더운데 저리 가 있어."
"헥헥."
엄마는 땀이 번들거리는 얼굴로 나를 애타게 불렀다.
"저 개새끼는 집이나 지킬 것이지 왜 따라와서 신경 쓰이게 해."
할머니의 호미질에는 신경질이 담겨 있었다.
퍽퍽 박히는 호미가 신경 쓰였는지 엄마는 나를 안고 조용히 나무 그늘로 갔다.
드디어 성공이다.
인간의 몸이었다면 작은 손이라도 보탰을 텐데 강아지의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엄마 주변을 맴돌며 허리라도 펼 수 있게 해주는 것, 지금처럼 나무 그늘에서 잠깐 쉴 수 있게 핑계를 만들어주는 것이 다였다.
"헥헥헥."
엄마가 땅에 내려주자마자 꼬리를 흔들며 주변을 뛰어다녔다.
"다롱아 이리와서 물 마셔."
난 엄마가 먼저 마실 때까지 계속 뛰어다녔다.
"너는 기운도 좋다."
엄마는 지쳤는지 몇 번 물을 더 권하다가 자신이 먼저 물 한 사발을 쭉 마셨다.
숨도 안 쉬고 마시는 엄마를 보고 마음이 놓였다.
나도 엄마가 따라 준 물을 재빠르게 마셨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데 엄마는 매일 어떻게 일하는 거야.
나무 그늘에 있으니 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는 모자를 벗어 수건으로 얼굴을 닦았다.
그러곤 멍하니 한 곳을 바라보았다.
나도 엄마 옆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엄마의 시선을 따라갔다.
할머니는 허리 한번 안 펴고 계속 호미질하고 계셨다.
온몸이 부서져라 농사를 지어도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자식들 학교도 다 못 보냈다. 생각할수록 답답한 현실이었다.
할 수 있는 게 농사고 농사라도 지어야 밥을 먹으니까.
어쩔 수 없으니까.
미래에도 엄마는 혼자서 나 키우느라 고생하는데.
어릴 때는 가고 싶은 학교도 못 가고 농사일만 하고.
갑자기 미안한 눈물이 차올라 세상이 일그러졌다.
따릉 따릉.
자전거 한 대가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엄마 앞에 멈춰 섰다.
"옥정아 안녕."
"현우 오빠!"
할머니를 바라보던 엄마의 고개가 빛의 속도로 돌아갔다.
엄마는 모자에 눌린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줍어했다.
엄마 얼굴이 햇빛 때문에 빨개진 건지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밭매고 있니?"
"응, 오빠. 풀이 그새 많이 자라가지고..."
엄마의 이런 행동은 처음 보았다.
드라마에 잘생긴 남자가 나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엄마였다.
현우 오빠와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모습을 보니 엄마도 이전엔 여자였다는 걸 새삼 느꼈다.
"오빠는 어디 가는 거야?"
엄마가 좋아하는 현우 오빠의 모습도 놀라웠다.
영국 국기가 그려져 있는 미치코런던 흰색 티셔츠에 무릎이 훤히 보일 정도로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현우 오빠의 흰색 티셔츠와 햇볕에 그을린 엄마의 까만 얼굴이 비교되었다.
바지는 엉덩이에 걸쳐 입어서 바닥을 쓸고 다닐 정도로 길었다.
아마 미래의 엄마가 현우 오빠의 청바지를 봤다면 찢어진 곳에 천을 덧대어 꿰매야 한다고 난리였을 거다.
현우 오빠의 멋진 패션은 간혹가다 알고리즘으로 떴던 90년대 패션 영상에서 봤던 그것이었다.
"오늘 시험보느라고 학교 일찍 끝났거든. 친구들이라 시내 놀러 가."
"아...그렇구나."
역시나 수줍어하는 엄마의 모습이 낯설다.
"옥정아 혹시 다음 주에 시간 돼?"
현우 오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대에 찬 엄마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설마 이 상황에서 데이트 신청?
한줄기 시원한 바람이 이들 사이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