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 나도 엄마 사랑받고 싶어 (8)
8화 - 신상 밥솥
영숙 엄마가 내 머리를 친 것이다.
"끼잉."
아픈 것보다 놀라서 신음이 절로 나왔다.
엄마도 놀랐는지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때리지 마세요."
"그 다롱인가 뭔가가 그리 좋으냐."
"네. 제 동생이에요. 품삯 받은 걸로 목걸이도 사줄 거예요."
"강아지는 네 동생이 아니야."
영숙 엄마가 내 등을 콕콕 찌르며 얘기했다.
엄마는 나를 연신 쓰다듬으며 영숙 엄마의 손길을 피했다.
"영숙 엄마 냅둬요. 옥정이는 농사짓느라 친구도 없는데. 개라도 친하게 지내야지."
아줌마들의 불쌍한 시선이 느껴졌다.
불쾌했다.
엄마는 아무런 대꾸도 없이 구석에 앉았다.
품 안에 있는 나를 쓰다듬으며 아줌마들의 대화를 들었다.
"철수네 좋은 거 샀다며?"
"어머, 벌써 소문이 거기까지 났어?"
철수 엄마가 턱을 들며 놀라는 척을 했다.
"뭔데. 자랑 좀 해 봐. 궁금하다."
적당히 배가 찬 아줌마들은 이제 수박에는 관심이 없었다.
모두 철수 엄마의 입에 집중했다.
"이번에 철수 아빠가 보너스 받은 걸로 전기압력밥솥 사 들고 왔지, 뭐야."
"혹시 진웅전기에서 새로 나온 밥솥 샀어?"
"진웅전기? 거기였나? 어머, 거기서 이번에 밥솥이 새로 나왔어? 그럼 거긴가 보다."
철수 엄마는 밥솥 회사가 어딘지 알면서 모르는 척 잘난 체했다.
"철수 엄마는 농사 왜 해. 철밥통 공무원 남편이 따박따박 월급 가져오는데."
영숙 엄마가 홱 돌아앉았다.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수다 떨러 나오는 거지."
"아이고, 팔자 좋은 소리 한다."
영숙 엄마는 등을 돌린 채로 투덜거렸다.
"거기 밥솥 좋아? 나도 하나 장만할까."
"요즘 가격 많이 떨어졌다는데."
신상 밥솥 등장에 아줌마들은 신이 났다.
"그럼. 삶의 질이 달라져. 밥맛도 더 좋고. 밥하기가 참 편해."
마치 자신이 밥솥을 만든 것처럼 철수 엄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밥솥 어디서 사요?"
가만히 앉아 이야기를 듣던 엄마가 물었다.
"저기 읍내 전파사 가면 살 수 있지. 왜? 옥정이도 엄마한테 사라고 하게?"
철수 엄마는 당장이라도 밥솥이 팔린 것처럼 좋아했다.
"옥정이네는 옥정이가 살림 다 하잖아. 밥하기 힘드니까 사고 싶은 거겠지."
은근히 무시하는 영숙 엄마의 말에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빨갛게 달아오른 엄마의 얼굴은 더워서가 아닌 부끄러움이었다.
"그럼, 엄마보고 사 달라고 해."
"엄마가 밥솥 살 돈 없으시데요."
순간 밥솥 이야기로 불타올랐던 분위기가 파삭 식어버렸다.
"딸도 똑같은 자식인데 뼈 빠지게 벌어서 아들한테만 돈 쓰고."
"옥정이 듣는다. 좀."
뒷산에 사는 이름 모를 새의 울음소리 사이로 아줌마들의 대화는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래서 제 돈으로 사려고요. 품삯 받은 걸로."
엄마는 품 안에 있던 나를 옆에 내려놓고 일어났다.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고 밭으로 들어갔다.
아줌마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각자 주섬주섬 일할 준비를 했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엄마를 향해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