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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종 May 13. 2022

사랑한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A Word)



 28. 사랑한다는 말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작고 이름 없는 존재가 다른 그런 존재에게,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이가 또 그런 이에게. 나는 너를 보면서도 어떻게 내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말은 이해를 벗어난 행동이다. 정말로 배려 없는 말이다. 터무니없이 낙관적이고 어리석으며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나 쉽게 할 만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을 하려 한다. 나는 너를 잡아두고 싶다.

 영원히 행복할 듯이 보이던 관계가 변하고 이제는 서로에게 닥쳐올 불행을 내 것처럼 겪어야 한다. 삶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많은 고통을 안겨주겠지만 우리는 그들 또한 마땅히 견뎌야 한다. 그 고통은 너로 인해 내게 주어질 것이자 나로 인해 네가 겪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이따금 찾아오는 좋은 순간을 기다리며 하루를 버텨낼 것이다. 우리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며 인위적인 노력과 선택이 우리를 흔들리지 않게 잡아줄 것이라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지고 더러는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아이는 우리의 삶을 훔쳐가겠지만 우리는 녀석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으리라. 삶의 막바지에 이르러 서로가 마주 보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마치 그렇게 될 것처럼 우리는 약속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을 이토록 어린 나이에 해내야 하는 걸까. 어쩌면 결혼이란 얻고 싶다기보다 놓치기 싫은 마음이 더 큰 실수일지도 모른다. 왜 다들 그 앞에만 서면 도망치고 싶어 하는지 알 것 같다.

 삶은 무의미하고 내게는 주어진 것이 없었다. 나는 목적도 없이 태어나서 원인으로만 존재했으며 자주 살아간다기보다는 살아짐 당하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나를 배경이나 대중, 한 자리 숫자나 돈으로 여길 때 내 곁에 나와 함께 살고 있는 한 사람이 있음을 알았다. 나는 삶의 주인공인 척 연기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내게는 감정이 없고 의견도 없었다. 액정이나 모니터에 비친 누군가의 말과 행동에 휩쓸려 살아갈 뿐이었다. 그런 삶에도 목적을 건네줄 무언가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무런 부끄럼 없이 염치도 없이 네게 나와 같은 삶을 살자고 말할 수 있을까. 아무도 우리가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주지 않을 텐데. 우리가 사랑했다는 것을 누구도 반기지 않을 텐데. 그렇게 우리는 서로만 남기고 살다가 흩어질 텐데.

 여전히 너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너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용기가 있는 걸까 철이 없는 걸까. 내가 가진 두려움을 알기나 할까. 어떻게 이리도 아무렇지 않은 듯이 나를 보며 사랑이란 일을 해낼 수 있을까. 나는 너무 두려운데, 너무 걱정스러운데. 우리의 삶이 어느 정도 선에서 시작해서 결국 그즈음에 멈추리란 것이 눈에 빤히 보이는데.

 나는 그 비밀을 모를 것이다. 그 용기와 무책임함과 무모함의 까닭을 나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이윽고 해가 지고 완연한 밤이 되어 사람들은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오던 길을 되돌아 그들은 출발한 곳으로 돌아간다. 너를 더 춥게 놔두면 나는 또 나중에 크게 혼이 날 것이 분명하다. 두고두고 기억에 남아서 틈만 나면 나를 괴롭힐 것이다. 우리에게 어떤 일이 닥쳐올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들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처럼 네게 약속해야 한다. 나중에 말이 바뀔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실한 것처럼 말해야 한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네 앞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목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찰나의 시간을 영원으로 잡아둘 실마리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밤하늘을 쏘아대던 오후의 햇살처럼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 사람이 존재했다는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까마득하게 잊히고 말 것이다. 우리의 삶에는 터무니없는 약속들 말고는 우리를 지탱해줄 만한 것이 없었다. 미래를 알지 못하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의 공허한 약속이야말로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이었다. 그 가느다란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내게 사랑한다는 말은 이리도 어려웠나 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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