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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기를

사랑에 도형 등장

by 송주

그때 내 나이는 20살이었다.

나는 작정한 듯 술과 사람들 속에서 보냈다. 학교라는 공교육 기관 아래에서 벗어났고 성인이 되었다. 자유와 책임 사이 균형 따윈 잊은 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일탈을 즐겼다. 매일매일 즐거웠다.

당연히 내 시험 성적은 바닥이었고 누군가는 내 학점이 당시 유명했던 야구 선수 방어율이라 놀리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어떤 고민 따위도 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내내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 가늠하지 못한 채 시키는 대로 학교를 갔고 늦게 까지 공부를 했다. 죽어도 학교에서 죽는다는 신념으로 아파도 개근은 해야 했다. 나는 그랬다. 선생님이 머리 길이를 정해 주면 딱 그렇게 잘라 다니던 말 잘 듣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대학 입학 후

지금이야 말로 그동안 아껴둔 노는 능력을 시험해 볼 차례라고 생각했다. 술에게 내 싱싱한 간을 재물로 바치고 즐거움을 얻고 다닌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내게 사랑이란 감정이 찾아왔다. 연예인만 좋아하던 내가 곁에 있던 누군가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사랑에 대한 고민은 풋풋했고 철없던 청춘들 모두의 공통 고민이었다. 몹쓸 사랑 때문에 술에 취해 주저리주저리 하소연을 했고, 고백을 했고, 울기도 했고, 웃기도 하며 짧은 청춘을 흘려보냈다. 아무 걱정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사랑, 썸, 연애는 그 당시 나를 무엇보다 설레게 했던 단어였다.


학기 초 신입생들을 위한 동아리 가두 홍보가 열을 올리던 때였다.

지금 생각해도 그 선배는 내가 만남 웃긴 사람 Top 3에 들 정도로 유머감각이 뛰어났다. 재미있는 사람은 다가가기도 편하고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매력이 있다. 아이린, 이사벨, 줄리아, 미셀, 나 이렇게 총 5명이 야구 동아리게 동시에 가입했다. 그때까지 야구는 내게 단어만 알던 스포츠였다.

야구 동아리 역사상 전무 후무 했던 신입생 여학생 5명 동시 가입 사건

사실 우리는 그 선배에게 깜짝 서프라이즈를 해 주고 스리슬쩍 다른 동아리에 가서 활동을 해 볼 참이었다. 동아리 복수 가입은 자유였기에 나 역시 몇 군데 가입 원서를 내놓은 상태였다.

동아리 건물은 학교 정문 근처에 있었고 오며 가며 1층에 있던 야구 동아리 문을 두드렸다. 선배들의 환대가 이어졌다. 그러다 어느새 동아리 방이 우리 5명의 아지트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좀 더 친해지자 선배들은 짓궂은 장난도 치며 우리를 편하게 대했다. 그런 장난조차 재미있어 까르륵 넘어가곤 했다.

그러는 사이 작고 퀘퀘한 동아리 방에서도 어김없이 남녀상열지사가 써지고 있었다.

많은 주인공들이 생겨났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내 이야기에는 삼각관계, 사각관계 등 사랑 이야기에 적절치 않은 도형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도형 꼭짓점 중 하나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자리를 얻게 되었다. 나는 그 도형을 허물 자신도 없었지만 세모, 네모 상태로 그대로 두기에도 버거워 감당이 되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지만 처음 겪는 이 상황에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미숙하기만 했다.


나와 미셀, 제이슨과 마이클 이들 넷이 이 네모 도형의 한 자리씩을 차지하게 되었다. 미셀은 자신이 좋아하는 제이슨이 자신에게 마음을 줄듯 말 듯하다 결국 내게 큐피드 화살을 쏜 것에 분노했다. 그리고 내게 질투 어린 선언을 했다. "너랑 안 놀아!"

또 제이슨과 마이클이 한밤에 격투인지 혈투 인지 모를 몸싸움을 벌였다는 말이 돌았다. 그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말까지 나돌기 시작했다.


각자의 사랑에 눈이 맞아 열심히 썸을 타던 아이린, 이자벨 , 줄리아 역시 이 상황이 당황스럽기는 마찬 가지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같은 학번 동기였던 피터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제이슨과 마이클이 너 때문에 다퉜다길래 네가 당연히 줄리아인 줄 알았잖아."

(줄리아는 그 당시 모든 남자들이 번호를 따러 혈안이 되어 있던 내 친구였다. 줄리아는 예뻤고 착했고 지금도 예쁘고 착하다.)


그 일로 나는 끝없이 미셀의 눈치를 봐야 했다.

미셀은 제이슨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 때문인지 화장실에서 눈물을 보이곤 했다. 그런 미셀을 친구들이 달래 주곤 했고 나는 미셀의 차가운 눈빛과 무시를 견디며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했다.

사춘기가 지났어도 친구는 내게 중요했다. 나는 제이슨의 구애도 수락할 수 없었고 미셀에게 웃으며 '난 우정을 택했어!" 할 수도 없었다. 이미 미셀과는 전처럼 관계가 회복되기 힘든 상태였다.


내 대학 생활은 점점 힘들어졌다.

의지처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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