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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나딘 Sep 09. 2020

까꿍

요즘은 너와 집에 있는 시기라서 그런건지 예전의 일들이 많이 떠오르더라. 물론, 그 당시와 지금은 그 이유가 너무 다르지만 나에게 두려움을 준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아.


지금도 물론 토리는 숨기를 좋아해. 그런데 스스로 숨을 수 있기 전에는 말이야~ 엄마 아빠가 얼굴을 잠시 가렸다가 "까꿍!" 하면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웃음을 보였단다. 

내가 잠시 얼굴을 가린 뒤에 다시 보여주는 것뿐인데, 뭐가 그리도 재미있는지 까꿍 놀이를 엄청 좋아하더라고. 이후에는 토리 얼굴을 잠시 가린 뒤 내가 "토리 어디 갔지?" 하고는 수건을 내리면 또 까르르르르~ 별일 아닌데도 그 아름다운 소리와 얼굴로 웃는 모습은 그 어떤 악한 기운도 녹일 것 같은 느낌이었어. 


이 놀이는 아주 오래전에 어떤 의사도 했던 거래. 포르트-다(forte_da) 게임이랑 비슷해.

그 할아버지 의사가 털실을 굴렸다가 당기면서 놀고 있는 아이를 보고 깨달은 점이 있데.

털실이 곧 엄마가 곁에 없을 때를 대신한다는 점이야. '포르트'는 '없다'를 말하고, '다'는 '있다'를 의미해. 


철학자들은 우리가 쉽게 말하는 있다는 의미에 대해 너무도 오래도록 아주 어렵게 고민했다고 들었어. 물론 책을 읽으면서 엄마도 머리카락 엄청 뽑았지. 

까꿍놀이 말고도 거울을 보면서 언제쯤 토리가 거울에 비추어진 너와 눈을 마주할지도 매일 관찰했단다. 정말이지 예전에 정신분석학자라고 불리던 사람들은 대단한 것 같아. 토리는 거의 돌이 되어갈 무렵에 눈을 마주하더라. 물론 스스로 너라고 생각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말이야. 나도 가끔은 내가 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워 아빠한테 "우리 방에 아가가 있어~ 쟨 언제 왔지?"라고 장난을 치기도 했단다. 

빈센트 반 고흐,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캔버스에 오일. 

'있다'는 바로 우리의 존재 자체를 깨닫는 말이기도 해. 그런데 눈에 뻔히 보이는 것에 대해서 왜 학자들은 그것이 있다는 점에 대해 의심을 했을까? 심지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 존재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지. 이 부분에 있어서 아주 유명한 그림이 있단다. 내가 토리를 안고 전시를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우리 토리가 명언을 남기기도 했던 그 작가야. 토리는 이 작품을 보고는 전시실이 떠나갈 듯이 "맘마~ 맘마~마!마!"라고 외쳤단다. 배가 고팠던 것인지 아는 장면에 반가워서 그랬는지 관람객 다수가 웃음을 겨우겨우 참았더랬지.

이 작가가 그린 그림 중 신발이 있어. 총 9개의 신발 그림을 그렸는데, 바로 그 신발 그림이 엄청난 논쟁을 일으켰단다. 신발이라는 것은 물건인데, 물건을 대상으로 마치 중요한 사람의 얼굴처럼 그렸다고 난리였지. 신발이지만 신발 주인의 초상화 같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신발은 발을 보호하고 외부에서 일을 하기 편리하게 만들어진 사물인데 그것을 그림으로 그렸으니 신발은 신발 자체로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나왔지. 

빈센트 반 고흐, <한 켤레의 신발>, 1886, 캔버스에 오일.

그런데 신발을 자세히 보면 오른발, 왼발의 한 짝꿍처럼 보이지 않기도 하단다. 그래서 같은 발의 신발을 두 개 그렸다는 이야기도 있지. 낡고 앞코가 터진 신발은 고된 하루를 보낸 농부의 노동에 대한 존엄함을 나타낸다고도 했고. 


토리가 까꿍 놀이를 좋아하는 것에서부터 아주아주 공부를 많이 한 세계적인 학자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또 비가시적인 것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우리가 혹은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매번 확인하고 싶어 하는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그리고 눈에 보도 '있다'는 것에 대해 의심을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봐. 


너무 다행이라 생각하는 점은 토리가 엄마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는 활짝 웃어준다는 거야. 그 미소와 웃음소리는 순간적인 행복과 동시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나 스스로 엄마의 존재로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단다. 

그런데 토리는 언제쯤 진짜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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