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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선수가 하고 싶었어 - 그것밖에 없는 줄 알았거든

화려한 인생, 반짝이는 걸 좇다가 불에 탈지도 몰라.

by 바다별 Mar 12. 2025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는가?


중학생, 질풍노도의 시기에 웬만한 것들로는 만족 근처에도 못 갔던 어린이가 야구선수 한 사람으로 인해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는 느낌을 알게 된다.


'여기서 홈런 하나만 쳐주면 진짜 소원이 없겠다.'를 현실로 만들어주는 대단한 선수를 목격한 2010년 올스타전. 사람들이 가진 기대에 부응하며 그들의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멋진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희망을 품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주는 스위치를 내가 작동시킨다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이런 멋진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야구선수가 되는 상상을 했다.


당연히 집안의 허락은 없었다. 왜냐면 난 운동을 못했거든.


인정하기 싫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중학생 때 야구를 시작해서 프로선수가 되는 일은,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꼭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 하고 싶었고,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삼진을 잡거나, 만루 홈런을 때리거나, 아니면 슈퍼 다이빙 캐치! 얼마나 멋진 장면인가! 누군가는 환호하고, 누군가는 기쁨에 겨워 눈물을 흘린다. 지쳐가던 각자의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나의 인터뷰. "저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께 꼭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오늘 조금이나마 그렇게 한 것 같아서 기쁩니다."


진심으로 응원하는 팬과 실력으로 보답하는 선수. 이보다 더 멋진 관계가 어디 있는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줄 자격이 있는 사람은 빛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그래서 빛나고 싶었다. 그래 내가 실력은 안 되지만, 그 실력이 성장하는 과정마저 성공스토리로 담긴다면 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거다. 도저히 포기가 안 되었다.


좋아하는 건 괜찮지만 취미로 하라니. 난 나 좋자고 하려는 게 아닌데?


이해가 안 되었다. 아니, 나만 잘나자고 하려는 게 아닌데도 집안의 응원을 못 받는다고? 이보다 더 아름다운 목표가 어딨 다고? 취미로 뛰는 사람을 누가 응원하고 누가 그에게 희망을 건다는 말인가? 그런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상상도 안 된다. 이렇게 선한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면 하나님도 감동하셔서 도울지 누가 아는데?


화만 잔뜩 냈다. 진지하게 이야기하려는 마음은 진정하려고 하면 불같이 올라오는 화 때문에 이내 자취를 감췄다. 교과서적인 사춘기 자녀의 모습으로 살았다는 걸 이제야 돌아보니 느낄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목표를 말도 안 통하는 자식이 내세우는데 그럼에도 대화를 하려고 하신 부모님처럼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때의 나에게


이제야 그때 내가 가진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해서 내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빛나는 걸 좋아한다. 빛은 사람에게 희망이 되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 한 줄기 빛은, 포기하려던 누군가에게 마지막으로 한번 더 힘을 내보자는 의지를 가지게 한다. 더군다나 그 빛이 자기와 같이 헤맸던 사람이 내는 빛이라면, 나도 똑같이 빛을 내어 다른 이에게 또 희망을 선물해야지 하는 마음을 심어줄 수 있다. 그렇게 우리 세상은 빛날 수 있다.


만약 내가 과거의 나를 마주한다면, 이 질문을 하고 싶다.


"빛을 내는 일은 다양한데, 너 혹시 너는 빛나지 않아도 된다면 그건 괜찮은지."


너무 어렵나 중학생 아이한테. 그럼 바꿔서.


"빛나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빛을 내도록 도와주는 일은 어떨까?"


야구선수가 홈런으로 응원하는 이를 짜릿하게 만들어주는 일은, 사실 혼자 이뤄낸 것이 아니다.

가까이부터 멀리, 그를 응원하는 응원단, 몸을 만들어준 트레이너, 영양사, 유니폼을 만든 제작사, 구장을 만든 시공사, 구단을 운영하는 구단주, 멋있는 장면을 부각해 주는 중계진 등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조연들로 인해 한 배우가 핀 조명을 받으며 명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린이는 그걸 몰랐다. 가장 빛나는 한 사람이 무대 위에 있으니까, 그냥 그 역할이 하고 싶었다. 어린 친구들은 좁은 시야를 가지고 그렇게 다른 이들과 경쟁한다. 불구덩이 싸움으로 뛰어든다. 불을 보고도 뛰어드는 나방처럼 상처 입고 절망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럴 때 누군가가, 빛나는 역할 말고 빛내는 역할도 충분히 멋있음을, 아니 어떨 때는 더 값진 일을 함을 말해주면 좋겠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행복을 전할 수 있는 역할의 소중함을, 자신으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빛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역할의 소중함을 꼭 알려주면 좋겠다.

 

내가 만약 더 넓은 시야로, 백스테이지까지 다 보았다면, 그때 그 시절을 덜 소란스럽게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이 세상을 빛으로 채우기 위해 더 애썼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도 애써본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빛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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