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할 수 없는 여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며 숨이 턱턱 막혀오는 한여름에 바닷물에 몸을 담그면 천국이 따로 없다. 너무 차갑지도 않으면서 시원한 물살이 나를 감싸는 느낌은 엄마의 자궁 속에 있을 때 양수 속에 노닐던 것과 비슷할까? 나는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뜨거운 햇살아래 바다에 둥둥 뜬 채 눈을 감고 있으면 온 우주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느낌이다.
그 행복한 시간을 방해하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다에 둥둥 떠다니다 보면 해변으로 혼자 힘으로는 다시 못 돌아간다는 사실. 그렇다. 나는 수영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늘 튜브에 몸을 뉘인 채 바다를 떠다녀야 하며, 누군가는 내 튜브를 잡아줘야 한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가지도 못한다. 데려가는 대로, 흘러가는 대로 내 몸을 맡길 뿐이다. 튜브를 타고서 수영을 해서 이리저리 잘도 다니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 몸에 맞는 커다란 튜브를 끼고 나면 다른 사람들보다 짧은 내 팔은 손만 간신히 물에 담긴 채 허우적댈 뿐이다. 튜브를 잡아줄 사람이 없을 때에는 다리가 닿는 위치에서 쪼그리고 앉아 목만 내놓고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기도 한다. 파도라는 게 언제 덮쳐올지 모르기 때문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요이땅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유의지가 강한 나는 물속에서 내 몸 하나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답답했다. 마침 집 앞 복합청사에 수영장이 생겨 이번에야 말로 수영을 배우겠다 다짐했다.
원피스 수영복은 자신이 없어 5부 바지 수영복을 샀다. 검정색은 촌스러워 보일 수 있으니 네이비로. 수영모도 유행하는 브랜드로 구입. 수경은 흰색에 오로라 빛깔이 나는 알을 갖춘 트렌디한 것으로. 수영복과 샤워용품을 넣어 다닐 가방도 큰 것과 작은 거 2개 구입.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새벽수영반에 등록했다.
첫 수업날
낯선 이들 속에서 레슬링복 같은 수영복을 입고 의지를 불태웠다. 초급반은 한 레인에 20명이 넘는 사람이 들어가서 물속을 휘적휘적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몇 바퀴 돌고 나서는 위에 걸터앉아 발장구를 연습힌다. 다들 양팔로 바닥을 짚고 휙~ 올라가서 예쁘게 돌아 앉는데, 근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나는 상체를 먼저 걸치고 한쪽 다리를 들어 먼저 올린 다음 낑낑거리며 간신히 앉았다. 안 그래도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어서 좁은데 한 3명은 앉을 수 있는 자리를 혼자 차지하고 기어오르고 있었다.
발끝을 모아 다리에 힘을 주어 발장구를 연습한다. 옆사람에게 물이 튈까 조심스러워 살살했는데 사방에서 물이 튀어 날아온다. 여긴 수영장이지. 물안경을 쓰고 미친 듯이 다리를 움직여본다. 그렇게 2번의 수업을 무사히 마쳤다.
3번째 수업날
이제 물에 떠서 손을 움직이며 호흡도 해본다. 음~파~ 내가 뱉은 침과 물을 다시 마시고, 코로 들이마신 물이 재채기로 튀어나오며 최선을 다하던 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뒤통수를 망치로 내려친 듯한 고통에 그 자리에 멈춰 잠시 숨을 골랐다.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 다시 움직이려고 했으나, 두통은 점점 심해졌다. 강사에게 이야기했더니, "운동을 너무 안 하다가 하면 그럴 수 있어요. 오늘은 일찍 귀가하셔서 마사지를 좀 해주세요."라고 했다.
대충 씻고 집으로 오는 길도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지만 집까지 와서 두통약을 2개나 입에 털어 넣고 잠시 누웠다가 출근했다. 하루 정도 지나자 두통은 사라졌다.
4번째 수업날
준비운동을 열심히 하고 물속에 들어갔다. 물에 뜨는 순간 지난번 찾아왔던 두통이 다시 왔다. 나 때문에 뒤가 밀려서는 안 되기에 참고 3~4바퀴를 돌았다. 눈앞까지 깜깜해지는 두통에 강사에게 말했다.
"선생님, 머리가 깨질 것 같아요"
"아.. 수모가 실리콘이잖아요. 새거라 머리를 꽉 눌러서 두통이 올 수 있어요. 수모를 좀 내려서 써보세요."
강사의 말대로 하니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았다. 그렇게 한 시간을 버티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오자마자 사이즈가 큰 수모 1개, 부드러워서 압박이 덜하다는 수모 1개를 로켓배송으로 추가 구입했다. 수모도 샀으니, 이제 안심.
두통은 사라지지 않아 약을 먹고 조금 쉬었다가 출근했다. 하루 종일 고개를 옆으로만 돌려도 번쩍번쩍하는 두통이 느껴졌고, 말을 해도 두통이 왔다. 그렇게 3일을 버티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동네 내과에 찾아갔다. 두통약을 처방해 주고, 별일 없겠지만 그래도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수영은 당분간 쉬라는 말과 함께...
두통이 일주일 이상 지속되자 불안해졌고, 종합병원을 예약했다.
신경과에서 뇌 MRI 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를 확인하는 날. 신경과 전문의는 "운동성 두통"이라는 진단을 내렸다. 너무 운동을 안 하다가 수영을 했을 때 복압이 생기면서 뇌까지 압력이 전해져 두통이 생긴다는 거였다. "운동성 두통"은 한번 뇌에 기억이 되면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같은 증상이 발현될 수 있고, 심하면 뇌혈관이 터질수도 있다며 가능하면 수영은 그만두라는 말도 함께였다.
복근이 있었으면, 수영을 배울 수 있었을까?
폐활량이 조금만 더 좋았으면 수영을 배울 수 있었을까?
하아.. 20만 원이나 주고 산 내 수영복과 3개나 되는 수모(그 중 2개는 뜯지도 않았다.), 오로라 빛깔의 수경은 어째야 하는 건가...
건강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운동. "수영"
나에게는 "위험한 운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