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상담시간이 10분이 넘어도 오지 않는 아동을 기다린 적이 있다. 10분이 넘어가자, 주양육자인 조모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담 시간을 깜빡하여 조모가 챙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지금 출발해도 30분이 넘게 걸리니까, 상담을 10분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할머니는 전전긍긍하셨다.
- 이를 어째, 내가 지금이라도 갈게요. 깜빡했어요. 어떡하죠
당일 마지막 상담이 7시였고, 마침 7시 상담이 사전 취소가 되어 비어있던 차였다. 센터에서 집까지 2시간, 왕복 4시간이 걸렸던 터라 1시간 이른 퇴근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값졌는데 나도 모르게 이렇게 내뱉어버렸다.
- 할머님, 그러면 마침 7시 상담이 취소되었으니, 그때 오셔요. 꼭 잊으시면 안돼요
전화를 끊고 나서 나도 모르게 내뱉은 말로 한숨을 내쉬고, 그런 날 보며 지나가던 동료 쌤이
- 쌤 웬 측은지심이에요 일찍 퇴근하시지!
라고 말했다. 나를 생각해주셔서 하신 말씀이다. 그리고 내 본심이 튀어나왔다.
- 그러게요.. 제가 할머니들한테 좀 약해요
#맥도날드에서 만난 할아버지
어렸을 적 그러니까 7-8살쯤 외가댁에 가는 날이면 종종 맥도날드를 가곤 했다. 지금도 존재하는 '해피밀'이라는 장난감은 어린 우리에겐 아주 소중한 장난감이었다.
이것을 모으고 집에선 맛보지 못하던 햄버거와 기름에 갓 튀긴 감자튀김을 먹다가 한쪽 좌석에 햄버거를 드시던 할아버지를 본 적이 있다. 내 할아버지들은 햄버거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소하고 낯선 풍경을 보듯이 바라보던 내 마음은 복잡 미묘했다. 뭐랄까. 외로워 보이기도 하고, 서구적 음식을 선호하는 것이 생소하기도 하고, 뭘 드시는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나이가 들어서일까. 지금은 이 마음이 무엇인지 어렴풋 정리해보자면 그 나이의 그들에게 무작정 호감이 있다. 정갈하게 챙겨 입은 옷깃과 소소하게 챙겨 온 그들의 소지품이 좋다. 콧물이 나오면 닦으려고 챙겨 온 손수건, 두루마리 휴지 두어줌. 내복 위에 셔츠 위에 조끼 위에 바람막이 위에 두꺼운 점퍼. 주머니엔 장갑 그리고 동전, 옷핀, 은단, 캐러멜 사탕, 지하철 카드가 들어있는 지퍼 달린 지갑(파우치).
흔들리던 20대에는 '나이가 들면 초연해질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중 2 때 스스로 만든 섬에서 나오지 않으려 작정하던 모습에는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먼지도 함께 생활하던 피조물쯤으로 느꼈다. 그러나 나도 나이가 든 걸까(이 말을 계속하는 걸 보면 아마도) 이제는 통제되지 않은 그 무엇을 내버려 두는 것을 잘 보지 못하겠다. 예를 들어 바지 안에 넣지 않은 히트텍(내복), 외식을 하는 날에는 꼭 챙겨야 하는 치실. 발목까지 올라와 바지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목이 긴 양말, 눈 오는 날에는 털 부츠.
그날 맥도날드에서 본 할아버지의 모습은 자신이 선호하던 음식을 먹으며 끼니를 챙기던 정갈한 모습이었다. 스스로를 돌본다는 것은 소소하고, 그 소소한 일들이 쌓여 내가 나에 대한 통제 능력을 높여준다.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겠느냐 만은, 뱃머리에 운전대쯤은 능숙히 다룰 수 있게 된달까.
우리는 그렇게 노인이 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