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아끼고 가장 사랑하는 수지에게
수지야 우선 이번 겨울방학에도 최우수상을 받은 것을 축하한다. 어쩌면 어린아이에 생각하는 것도 재주도 그렇게 훌륭한지 할아버지는 예전에 보지 못했다. 우리 수지는 자라서 틀림없이 남들이 부러워하는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수지가 보내준 선물은 할아버지가 눈물겹도록 고마워서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귀가 아파서 빨래 찝게로 귀를 집은 것이 얼마나 안타깝게 보았스면. 명지네 집에 가서 찝게를 구할 생각을 했겠니. 정말 빨래 찝게로 하면 귀가 몹씨 아팟단다.
그러나 수지가 보내준 집게로 집으니 하나도 아프지 않단다. 수지의 착한 마음씨로 해서 할아버지의 귀병은 곳 나을 것 같다. 또한 수지로선 너무나 과한 선물을 사서 보냈으니. 할아버지는 감사한 마음으로 선물을 먹고 건강해질 것이다.
나의 착한 손녀 수지야! 수지의 그 고마운 마음씨는 하늘도 알고, 수지를 도와줄 것이다. 착하고 예븐 수지가 용돈을 아껴서 온갓 정성을 다해서 쪼코랫을 고르고 또 예쁜 포장지로 아름답게 싸서 보내준 그 정성은 아마 내 손녀 수지뿐 일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손녀 수지야. 그 아름다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산다면, 반드시 수지는 훌륭한 사람이 될 것이다.
수지의 앞날은 밝은 햇빛만 비칠 것이다.
사랑하는 수지야. 언제나 곱고 아름다운 착한 마음으로 공부도 열심히 하면 수지는 성공을 할 것이다. 수지야 다음 동생 종협이의 유치원 졸업식 때와 초등학교 입학식 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축하해주기 위해서 꼭 갈 것이다. 수지야. 지금도 감기로 고생을 한다고 하는데, 엄마 말 잘듯고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서 지내라. 그래야 병도 낫고 건강해지지. 그렇지. 그럼 다음 만날 때까지 안녕
2001년 2월 14일
할아버지가 보낸다.
할아버지는 내가 2-3학년 때부터 나에게 꾸준히 편지를 보내셨다. 이 편지는 나의 답장이었으며, 나는 할아버지에게 답장이었다. 이때 어렴풋이 기억나는 데, 할아버지는 자차도 없으셨고 도보로 겨울에 우표를 모으러 우체국을 가는 일이 잦으셨다. 귀가 아파서 수술을 하신 와중에 급격히 낮은 온도에서 귀가 얼어붙을 만큼 아려 빨래집게로 집으셨다고 했었다. 당시 나는 4학년이었는데, 내 동심에서 빨래집게로 귀를 집는 일은 공포에 가까운 “아픈 일”이라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친척 집에 우연히 놀러 갔다가 부드러운 집게를 발견하고 초콜릿과 동봉하여 보냈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나의 소소한 마음을 크게 여겨 돌려주신 분이었다. 글을 읽으면 부끄러울 정도로 칭찬을 해주시는데, 그게 그때는 당연할 만큼 늘 나의 작은 하나하나를 크게 여겨주셨다.
지금의 남편 B와 연애 중이던 시절, 남편이 나에게 어떤 말이 가장 듣기 좋으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내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러니까 정확히 이야기하면 “수지야”가 가장 기분 좋다고 답하였다. 당시에 그게 왜 기분이 좋은지, 나도 B도 알지 못하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잊혀졌던 나의 유년-아동 시절 “수지야”라고 불러주던, 나의 바다-하늘-들판이 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할아버지는 그중에서도 가장 큰 하늘이었다. 내가 소리쳐도, 울어도, 앞구르기를 해도 다 어여삐 봐주고 받아주는 하늘. 할아버지의 편지는 늘 습자지와 같은 얇은 종이에 글을 가득 쓰여있었는데, 오른쪽 모퉁이에는 재밌는 키워드가 적혀 있었다. 그런 귀여운 포인트를 찾으며, 한 장이 두장이길- 두장이 세장이길 바라며 읽어 내려간 기억이 있다. 그렇게 아기자기하고 넓은 하늘이 나에게 있었다는 걸 까먹고 살아온 시간이 길어 새삼스러운 눈물이 난다.
나의 하늘(202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