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9일 편지

by 오후세시
수지야 안녕!
날씨는 춥고 학교는 멀어서 다니기가 힘이 들겠구나. 그동안 엄마 아빠도 안녕하시고 종협이도 학교에 잘 다니고 있지
할머니 할아버지는 8일 전에 수지가 가본 에이스 침대 회사와 왕건 촬영장을 구경했는대 시간도 1시간밖에 안 주고, 날씨가 추워서 구경도 못하고 돌아왔단다.
수지야 몸 건강하게 학교에 잘 다니거라. 이번에는 삼촌이 찍어준 사진 2장을 보내줄께. 그럼 안녕

2001년 3월 9일 할아버지가.


2001년, 지금으로 부터 21년 전이다. 21년 전이든 지금이든 초등학교 여자애에게 가장 소중하고 좋아했던 것은 친구 그리고 아이돌이다. 실내화를 따로 챙겨서 들고 다녀야 해서 일명 신발주머니를 들고 다녔더랬다. 그 때에는 자고로 책가방을 맨 채, 신발주머니는 손목에 걸고, 컵볶이는 쥔 채로 먹어줘야 제 맛이었다. 문방구 앞에서 동전을 넣고 사은품으로 아이돌 포토카드(그때도 포토카드가 있었다니, 포토카드 역사가 오래됐구나)를 뽑았는데, 신화가 나오면 내 친구를 주고, god가 나오면 내가 갖곤 했다. 누가 누구와 사귄다는 이야기는 어린 나이였지만 가장 재밌었던 이야기였고, 투투(사귄지 22일되는 날)를 챙긴다며 200원씩 걷어가던 것이 일상이었다. 쉬는 시간에는 학종이를 손바닥으로 쳐서 넘기면 따가는 ‘학종이 따기’나 ‘공기’를 종종 했었고, 남자아이들과 곁눈질해가면서 편을 갈랐다. 그렇게 고학년으로 넘어가던 4학년, 할아버지의 편지에 답장을 하는 것이 귀찮기 시작했다.

그 어린애가 할아버지의 이야기들이 늘 반가울 리 없었다. 재밌게 읽어둔 편지는 잠시였고 ‘답장 써야 하는데’ 마음은 있었지만, 현실은 버디버디가 훨씬 더 재밌었다. 가족보다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재밌었고 즐거웠다. 그렇게 답장이 밀릴 때쯤, 할아버지는 또다시 편지를 보내왔다. 그때에는 편지가 도착하면 엄마가 내 방 책상에 올려두었는데, 하교하고 방에 들어오면 편지를 발견하고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다. 처음엔 ‘아 답장 못 했는데’ 싶어 양심이 찔리다가, 무슨 내용일지 궁금해 열어보다가, 다시 답을 하기 귀찮아졌다.

그날 편지는 할아버지가 편지에서 다녀왔다고 이야기했던 곳에서 찍은 사진 2장을 동봉해 같이 보내주셨다. 사진을 인화해서 편지와 함께 동봉해준 것은 보통 정성이 아닐텐데 그조차도 헤아리지 못했다.




나에겐 관계에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 애를 쓰며 보내던 시절이 있다. 내가 더 주어야 작용되는 관계는 오묘하게 친구관계나 연인관계에 존재했다. 나의 신경이 그곳에 가있는 동안, 애석하게도 상대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바라만 보던 시절. 나에게는 그 관계의 좌절감이 곧 나의 존재가 좌절당하는 것처럼 느끼곤 했다. 그래서 주면 받아야 한다는 곧디 곧은 관계의 공식을 만들어 적용하려 했지만 그 공식이 늘 들어맞은 것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내가 더 주기도 해야 했고, 내가 더 받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에 의연해질 때쯤 내가 더 주는 것이 곧 에너지가 쓰이는 것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난 적이 이따금 있었다. 타인에게 베푼 나의 배려와 애정이, 나에게로부터 나온 것임을 느낀 다음부터였다. 그 쯤 내가 깨달은 것은, 타인이 특별해서 내가 애정을 바쳐야 하는 수직관계가 아니었더랬다. 내가 타인을 애정 어리게 바라본 것이 불순물 없이 순수한 것일 때 그것은 나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그 상대와 관계가 희미해져도 그것이 아프지 않았다. 통찰해보건대, 전에는 병리적으로 관계를 맺었던 것 같다. 상대가 아닌, 관계 자체에서 얻고 싶은 으스댐, 인정-애정 욕구에 목을 매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주기만 해도 기분이 산뜻하릴만큼 조급해지지 않은 관계가 있었는데, 그중 대부분 내 안에서 상대를 애정 하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둥지형 인간이라, 협소하게 관계를 맺는 것을 선호한다. 아는 얼굴을 보는 것이 좋고, 그들을 만나는 게 편했다. 그래서 더더욱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해 애쓰며 보내던 시절이 편했다. 하지만 최근 주변에 몇몇이 들을 만날 때, 편지와 선물을 준비하는 날 보면서 ‘내가 이런 걸 좋아했구나’ 느낀다. 애정 어린 시선을 나만 느끼고 거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주고 그 주는 것에 의의를 두지 않을 만큼 만족스러운 것. 지금 나의 기지에는 상대가 안전치 않으면 날 방어할 만큼의 방어무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게 줄 물자와 자원도 많고, 방패뿐 아니라 공격무기도 있다. 전에는 모래주머니와 방패막, 다른 곳으로 도망칠 운송수단-선박 등이 넘쳐났겠지만.


그때 할아버지는 4학년짜리 손녀를 보며, 지금 나와 같이 느꼈으리라. 세 번 주고 한번 받을지 언정, 그 주는 것이 기쁨이고 그 기쁨은 오롯이 나의 것이라 후회도 들지 않는. 무뚝뚝한 그에게는 이 사소하기 짝이 없는 편지가 그 애정이었으리라. 내가 떠마시고 떠마셔도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은 애정. 그는 알까. 4학년짜리 손녀가 20년이 지난 자신의 편지 한 장에서 뚝뚝 흘러나오는 애정을 느낀다는 걸. 그가 주는 애정이 과거에는 죄책감과 양심이었지만, 지금 나에게 큰 재산이란 걸.



받는 것 생각치 않는 애정(2022.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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