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22일

by 오후세시
귀여운 수지에게

수지야 그동안 학교에 잘 다니고 건강하게 지내고 있겠지! 오늘 수지의 예뿐 편지를 받아보았다. 얼마나 반가운지 할아버지는 아주 기뻣다. 그전에 수영을 간다고 했지! 수영을 못한다고 걱정할 것이 없단다. 누가 처음부터 수영 잘하는 사람이 있니? 처음부터 배우면 된단다. 그러니 수영 못한다고 하나도 걱정할 것 없다. 수영하러 가거라. 그래서 할머니께서 수영복을 사주시겠다고 했으니 ①어떤 모양의 수영복을 ②어떤 색깔을 ③어떤 무늬의 수영복을 입고 싶은지 전화를 하거나 편기를 하고. 시간이 급하면 토요일에 내자동에 와서 할머니와 같이 시장이나 백화점에 가서 수영복을 살 수 있게 엄마에게 이야기하고 오거라. 수지가 편한 대로 해라. 수영을 못해도 가서 배우면 되니까. 친구들하고 꼭 가야 된다! 따라서 그 시간에 맞게 연락을 하거나 내자동*에 오너라. 어려서는 하고 싶은 것은 다 해야 기분도 상쾌하고 좋단다.
(*외가댁 지명, 서울시 내자동)

수지에게 할아버지가 보낸다. 안녕!!!


한 가지의 직업에 몰두하지 않은 채, 여러 가지 일을 벌여놓는 내 성질에 맞게 유치원 교사, 캘리그라피 작가, 심리상담사 그리고 지금은 동화작가를 꿈꾼다. 오늘 점심을 먹고 남편과 산책하면서도 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우물만 파지 않고 몰두하지 못하는 모양새가 어느 순간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지 못하는 건 아닌가 우려했다. 그의 성격에 걸맞게 B는 요즘 시대에서는 한 가지 직업 가지고 살면 오래 못 버틴다며 날 위로했다. 하고 싶은 욕구가 수용된다는 것은 늘 고맙고 반가운 일이다. 불안했던 기질을 가진 나는 어린 시절부터 새롭고 낯선 경험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고, 수영도 그랬을 것이다. 사실 당시의 기억이 정확하게 나지는 않는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하고 싶은 일은 걱정하지 말고 해 보라고 대신하여 단언하셨다. 그 모양이 참으로 든든했다. 지금은 다시 읽으면서 수영복을 선물하기보다 마음에 들기 위해 섬세하게 모양과 색깔과 무늬를 묻는 것이 귀엽다고 느껴진다. 든든했던 그가 귀여웠던 포인트를 몇 가지 잡아보자면, 첫 번째 본인도 불안하여 내 수영복의 여러 가지를 물어보면서 걱정할 것 없다고 안심시키는 것(할아버지는 편지의 반이 꽤나 넘게 이야기하고 계신다 수영복에 대해ㅎㅎ). 두 번째는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것을 해야 기분도 상쾌하고 좋단다라는 말이 어른이 되어보니 무슨 말인지 알겠는 것. 세 번째는 기분이 좋으셨는지 나에게 토끼를 그려주고, 본인을 개미(개미가 확실한 것인지, 옆에 왕자는 무엇인지 아직 미스터리)로 그려놓은 것. 그리고 마지막은 할아버지의 시그니처로 오른쪽 상단에 사랑을 적어 넣은 것.


오늘도 편지를 읽으며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울었고, 나이가 들어 이것저것 하고 싶은 마음에 단비가 되어 시원케 따뜻하다. 답을 얻은 것이 시원했다면 담담한 위로가 따뜻하다. 그리고 오늘따라 할아버지가 귀엽다. 틀린 맞춤법(예뿐 편지)도 귀엽고, 그림도 귀엽다. 귀여운 할아버지에게 하늘에 답장이 닿을 수 있다면, 하고 싶은 것 잘하고 있노라고 답해주고 싶다. 오늘도 할아버지를 통해 날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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