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하는 손녀 수지에게
수지야! 네가 정성껏 써서 보내준 알뜰한 편지를 5월 11일 토요일 아침에 받았다. 편지 겉 봉투에는 파주우체국장께서 “사랑 나누기 편지 쓰기 대회”에 접수된 것으로 사본을 보냅니다라고 인쇄가 됐더라. 할아버지는 처음 받아보는 깊은 사연이 있는 편지여서 더욱 반가웠단다. 수지야! 공부하느라고 무척 힘들지. 그러나 이것은 수지의 미래를 위해서. 장차에 행복을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란다. 그러니 얼마나 값진 일이냐. 이 값진 일을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이 인생의 승리자가 되는 길이란다. 이솝우화에 “개미와 베짱이”라는 것 잘 알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은 커서 행복해진다는 것을. 편지를 보니 6학년이 되고서 수지가 한층 어른스러워졌더구나. 선악을 구별할 수도 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도 있는 나이가 됐구나. 할아버지는 수지와 같이 살지 않고, 가끔 만나 보니 아직도 어린애 같이만 보았는데 많이 성장했음을 편지에서 역역히 볼 수 있어서 얼마나 의젓하고 대견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키워준 아빠 엄마에게도 고맙고 수지가 무럭무럭 자라주어서 더욱 고맙고. 수지야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몸조심하고 협이도 잘 돌봐주고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열심히! 파이팅!!!
5월 13일 서울에서 할아버지가.
한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면서 가졌을 할아버지의 뿌듯함을 어림잡아 느껴본다. 하지만 그 뿌듯함과 다르게 나는 예민하고 민감한 아이였다. 감독 생활로 아빠와 떨어져,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홀로 나와 동생을 키운 엄마의 책임감을 나는 화분이 물을 받아먹듯 받아먹었다. 5살 차이가 나는 동생에게 질투도 나지만,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철없는 행동으로 엄마가 힘들진 않을까 애쓰며 자랐다. 엄마에게 때론 친구로, 때론 첫째-장녀로서의 역할을 했고,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 어린아이에게 하늘과 같은 엄마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부머리가 없지만 어렸을 때도 글쓰기를 좋아해, 글짓기 대회를 종종 나가서 상을 타 왔다. 그러면 표현 잘 않던 엄마도 다른 친척들도 좋아하셨고, 나는 그렇게 나라는 사람의 지도를 그려왔다. 한 영역엔 책임감이 자리 잡았고, 한 영역엔 그래도 믿고 보는 나의 자원인 창작(글짓기, 그림 그리기)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이야기했던 선악을 구별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할 줄 알며, 개미와 베짱이에서는 개미가 되길 바랬던 마음은 부담감으로 다가와 듣기 불편했던 기억이 난다. 좀 더 적나라게 이야기하자면 부담되고 거북했다. 다시 지도를 펼쳐 나의 책임감에 별표 표시를 하고 영역을 더 확장시키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나는 책임감과 죄책감에 민감하게 자라왔다. 누가 보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어릴 적 아빠 없이 홀로 육아하는 엄마를 힘들지 않게 하고, 동생도 잘 돌보고, 나의 일과에도 성실하게 생활해야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실망스러움’ ‘인정받지 못함’을 느끼는 것이 마치 비난과도 같았다. 내가 마땅히 해야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고 여겼다. 사실 그건 하면 +인 일이지, 안한다고 -되는 일은 아닌데 말이다. 얼마 전 부모님과 식사자리에서 자녀를 키울 때에는 딸은 꼭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는데 그 말이, 뿌듯함과 동시에 나에 대한 안쓰러움을 몰려오게 했다. 순간 당시에도 놀이치료가 보편적이었다면 달라졌을까 생각을 했었다. 금쪽상담실에 내가 나왔다면 좀 달라졌을까 말도 안되는 상상을 스스로 해보곤 했다.
할아버지가 모르는 나의 이런 책임감은 내가 숨길 때로 잘 숨겨왔다. 부모님도 아마 이 정도까지는 모르실 것이다. 인간이 태어나 부모와 첫 번째 애착을 맺는다면, 성인이 되어서 가장 신뢰할만한 사람과 ‘성인애착’을 맺는다고 한다. 나는 지금의 남편과 성인애착을 안정적으로 형성해왔고, 나의 지도를 펼쳐 곳곳을 설명해주고 이해받았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삐뚤어지지 않고 내 자리를 잡아갈 수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나에 대해 깊숙히 몰라도 괜찮을 수 있었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할아버지에게 말할 수 있을까. 사실 너무 힘들고 지친다고, 동생 보는 것도 싫고 자꾸 주변에서 엄마 말 잘 들어라- 동생 잘 돌봐라- 하는 이야기가 듣기 싫다고. 나는 내 일만 하기도 아직 어린 나이 아니냐고. 이렇게 날 것까지는 아니어도 이야기해보고 싶다. 여름방학- 나에게 궁을 구경시켜준 뒤 맥도널드에 앉아 햄버거를 먹으면서 첫째는 원래 이렇게 힘든 거냐고 물어봐야지. 엄마가 힘들 때 무서워지는 기분이 든다고 말해봐야지. 엄마에게 말하지 못했던 속마음을 할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 묵묵히 들어줄 것이다. 자상하고 이해 깊은 말은 못 해주실 테지만, 그 여운을 안고 날 지금처럼 지켜보고 돌봐주실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지금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2022.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