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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산책 Oct 29. 2020

내가 쉬어도 별일은 없다

수연과 서진

서진은 몸을 뒤척이며 잠에서 깨어났다. 어제 마신 와인의 숙취로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움을 느꼈다. 몸이 그렇다 한들 숙소에 남아 달리 할 일도 없으니 훌훌 털고 일어나 출발해야 한다. 서진에게 ‘휴식’이란 ‘일’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순례길에서조차 평소의 습관대로 일을 하듯 걸으려 하고 있었다.

‘도대체 목적도 없이 걷는 게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이야?’

서진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라고 이 여행을 추천해준 친구가 원망스럽다. 친구는 순례길을 통해 인생이 달라졌다고 노래를 불렀었는데. 돌아가면 한마디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힘들게 몸을 움직인다.


그는 씻고 방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연을 만났다. 어제 이야기를 나눠서인지 그녀가 가깝게 느껴진다. 수연은 그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럽게 말한다.

- 얼굴이 창백해요.

- 어제 먹은 술 때문인가 봐요.

- 걸을 수 있겠어요?

- 걸어야죠. 할 일도 없는데

- 서진 씨, 아프면 쉬었다 가요. 당신이 쉰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 어떻게 쉬는 건지 몰라요.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한다.

- * 햇볕을 쬐고 숨을 쉬어요. 그냥 쉬면 되죠.

- 그렇게 아무것도 안 하면 외로움을 느낄 겁니다.

- 걷는다고 외로움이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잠깐 잊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또다시 외로워질걸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내가 나를 더 사랑해야죠.

그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다.


- 수연 씨 말대로 쉬다 보면 아내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 겁니다. 그냥 걷는 게 나을 것 같아요.

- 물론 선택은 당신이 하는 거예요. 나도 전에는 그를 잊기 위해 나를 괴롭히며 걸었어요. 하지만 기분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그 상태가 유지되더군요. 순례길에서 어떤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줬어요. “생각과 감정은 내가 아니다. 관찰자가 되어 생각과 감정을 흘려보내라.” 저한테는 이 말이 도움이 됐어요. 어쩌면 서진 씨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 생각과 감정을 흘려보내라구요? 그게 가능한가요?

- 가능해요. 가능하더라구요. 저를 보세요. 당신처럼 힘들었지만 지금은 좋아 보이지 않나요? 당신도 편안해지면 좋겠어요. 정말로.

- 좋아요. 수연 씨 말대로 오늘은 생각과 감정을 흘려보내면서 쉬어 볼게요. 나를 사랑하는 것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도 생각해봐야죠. 어차피 돌아가면 혼자일 테니까.

- 그래요. 서진 씨, 부엔 카미노 (Buen Camino, 좋은 순례길이 되기를)

수연은 출발하고 서진은 남는다. 그는 오늘 자신을 위해 온전히 쉬기로 한다.    

 



다시 방에 들어가 충분한 잠을 자고 나온 서진은 마당으로 나가 어제 널어놓은 빨래를 걷고 벤치에 앉아 햇볕을 쬔다.

‘내가 쉬어도 별 일은 없다.’

햇볕은 따사롭고 바람은 시원하다. 피부에 닿는 햇볕을 느끼며 숨을 깊게 들이쉰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원망의 감정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는 의식적으로 몇 차례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흘려보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기 시작한다.     


다음 편에 계속...



* 커버 이미지 출처: pixabay

* 햇볕을 쬐고 숨을 쉬어요 출처: 이하이 노래 '홀로' 일부분(안신애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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