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억 : 봄은 간다
봄은 간다
김억
밤이로다.
봄이다.
밤만도 애달픈데
봄만도 생각인데
날은 빠르다.
봄은 간다.
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
저 바람에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떠돈다.
종소리 빗긴다.
말도 없는 밤의 설움
소리 없는 봄의 가슴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태서문예신보』 1918.1.30.
Spring Goes
Kim, Uk
It is the night.
It is spring.
The night alone is heartbreaking,
And spring only leads to thinking,
But days run fast,
Spring goes.
Deep thinking knows no end,
Birds are sadly crying over the wind.
Black mist is floating,
The sound of a bell veers away.
The sorrow of the wordless night,
The bosom of the soundless spring,
Flowers fall.
My beloved laments.
* Posted in ‘Taeseo Munye Shinbo’, a literary magazine on Jan. 30, 1918
단문의 간결한 문체로 된 김억의 ‘봄은 간다’는 뚝뚝 끊기는 생각의 단절과 희망의 절연을 상징한다. 밤과 봄의 반어법적 대조, 끝없이 이어지는 생각, 쏜 살처럼 지나가는 세월, 새들의 울음과 떠도는 밤안개, 비껴가는 종소리는 잊혀진 꿈의 상징일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시인의 삶 또한 그의 시만큼이나 허황하다.
작가이자 언론인, 교육자이기도 했던 김억(1896~?)은 낭만주의 성향의 '폐허'와 '창조'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20세기 초 해외 문학 이론을 처음 국내에 소개한 시인이었다. 한국 자유시의 지평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되는 그는 서구의 상징시를 처음으로 한국에 소개하여 1920년대 초반 상징시풍이 문단에 정착하는 계기를 열었다. 또한 오산학교 교사시절에는 김소월에게 시를 가르치기도 하였다. 한국 전쟁 때 납북된 그는 북한으로 간 뒤 행적이 불분명하다. 협동농장으로 강제 이주되었다는 설도 있는 만큼 가버린 봄 같은 그의 삶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