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9일
말 없는 벙어리와의 연애는 고양이와의 동침과 같소.
발 없는 말은 천리를 간다지만 말 없는 두 연인간의 발등은 한치 앞을 모르오.
내 편지는 못다한 말들의 박제요, 벽 한칸의 그림이외다.
그대라는 꽃을 보고 말 없이 소묘하는 과정이오만.
마음을 다해 그대를 담아보려 하오.
그러나 화분이 없으면, 눈앞의 꽃이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내가 그대를 곁에 두려 하였으나, 내 안에 담을 곳이 없어 잔향조차 스치지 않았구려.
괜히 코끝이 간지러워 휴지를 구겨쥐었소.
얼굴 속 미소는 참 재밌소.
허나 그대, 웃음의 대가란 무엇인지 몰라 영 답답하구려.
내 취미와 지식 따위를 총동원해도, 이치에 맞게 확인할 수 없소.
웃음에는 갈래가 있소.
행복의 숨결. 씁쓸한 모서리. 어이없음의 헛웃음.
(전두엽이 궁상을 넘나들며, 후두부를 간질인다 하오.)
달라 보이나 뿌리는 하나, 이해 불능의 바닥이오.
내 두 눈으로 그대의 인지 과정을 직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처음 웃은 것은, 천구백구십팔년 시월 구일 저녁 여섯 시 반을 갓 넘긴 순간이었소.
세상은 이를 한글날이라 부르되, 나에겐 첫 만남의 기념일이라 명명하려 합니다만.
나는 언어의 냄새를 반추하곤 하오.
내가 말 할 수만 있다면야 비문을 남발해도 좋으련만.
내 기록은 행복을 부르는 작은 반복일 뿐이오.
괴이하다 여기면 또한 괜찮소.
원래 사랑은 역병과 같다 하지 않는가?
같이 즐거운 병에 걸려 웃어보면 좋겠소.
그대는 미소를 모르는 웃음의 사신이오.
혹은 검은 털의 토끼가 좋을 것 같네만.
몸집은 작고, 눈빛은 겨울 저녁 같았소.
지하철 출구에 나타난 순간,
나는 낯선 장례식을 연상하였소.
무채색의 옷차림. 버려진 짐승 같았소.
(헌데 버려진 것은 나 아니었소? 모순이오.)
손을 잡으니, 차갑게 떨고 있었소.
마음은 걸렸으나, 그대는 태연했지.
반대로 나는 대화의 매장터요.
보다시피 벙어리기에-혀에 머무른 말들은 다시 목젖을 건들이다 소화되곤 하오.
배설되지 못한 언어의 감정은 가끔 부르터서 타인을 상처입히곤 했소만.
그대와 밥을 먹고, 백화점에 들러 옷을 보자 했던 것 기억하시오?
실은 그대가 추워할까, 천 조각 하나라도 얹어주려 했던 거였소.
상인이 오천 원을 부르기에, 격자무늬와 솜털 무늬 두 개를 골랐지.
솜털은 따가워서, 그대의 편안함을 바라는 마음에 격자를 건넸소.
허나 그대는 말했소.
“바라는 것을 가져가라.”
나는 격자를 두르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소.
곰곰이 생각하니, 내 배려를 강요해보고 싶었던 것이었소.
그대가 집으로 돌아갈 때, 내 향수 냄새라도 따라붙어 나를 더 오래 기억하길 바랐던 연유였소.
허나 그것이 오히려 싫증의 사유가 되었던 듯하오.
과거를 가위질해 잘라낼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겠네만.
하지만 잘라낸들, 결과가 달라질까?
난 아니라고 보오. 그러니 하릴없이 기다릴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