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검정토끼 03화

세 번째 만남

1998년 10월 20일

by 장준

오늘 꿈 속에서 도시락을 선물로 받았소.


검정 천 보로 감싸진 속을 알 수 없는 네모였네.


그대와 처음 본 지하철에서 나는 삼 층이나 되는 도시락 곽을 받았는데—


일 층의 곽에는 깨지지 않은 달걀 세 개가 덩그러이 있소.
이 층의 곽에는 뜨거운 열기만이 공간을 메우고 있소.
삼 층의 곽에는 순백의 흰 쌀밥이 오곡히 채워져 있소.


닭의 알이 익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위에서 눌린 온도에 껍질 속 눈물이 찬장에 맺혀 흐르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찝찝하기 그지 없구려.


순욱별전에 이르길, 조승상에게 빈 찬합을 받은 순욱이 그 뜻을 헤아려 음독자결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꿈보단 해몽 아니겠는가.


나는 그저 애정하는 그대를 너무 생각한 까닭에 잠 속까지 찼아왔나 싶었으나, 꿈이라는 것은 원체 괴상망측한 상징의 연속이 아니겠는가? 찝찝한 기분이나 떨치고자 시장에 찬거리를 사러 왔소.


시장 골목에서는 생선 비린내, 자박이는 찬물, 전부 피워진 담배꽁초들이 골목 바닥에 누워 잠을 자더이다.

나는 차마 신발을 더럽히고 싶지 않아 외식을 할까 생각했지만, 차라리 밑단을 접어 올려 발목을 드러내는 것이 나을 듯싶어 그대로 걸었소.


시장 한편에서 순대를 보았는데, 돼지 창자 속에 낯선 당면이 있더군.

고향에선 곱과 피, 콩나물이 들어간 것을 먹곤 했소만. 퍽 기이하기 짝이 없소.

그 다른 모습을 보는 순간, 마치 내가 알던 당신도 속을 바꾸어 낯선 무언가 변한—그런 생각이 스치니 묘한 긴장이 일더군 그래.


곱 대신 당면이 들어간 창자처럼, 당신의 속이 다른 누군가로 채워질까 퍽 두렵소.


내 자존심이. [------------] 알잖는가, 곱디 고운 그대가 나 같은 벙어리를 좋아하는 연유가 궁금하더군그려.

사람을 겉으로만 판단해선 안되지만, 또 속으로만도 평가해선 안되겠지.

그대에게 나는 어떤 심상으로 존재하는지 궁금하구려.

다음에 만난다면 그 답을 들려주시게.


시장을 나와 근처 제과점에 들르니, 사람들은 비싼 다과와 음료를 아무렇지 않게 즐기고 있더이다.
풍족치 못한 집안에서 먹고자란 나는 빵과 과자를 자주 맛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낯선 세상이 다들 그 달콤함 속에 살고 있는 듯하오.


나는 그대를 닮은 다과를 몇 골라 보내오.

푹신한 빵은 꼭 그대의 느슨한 말투 같고, 오목조목한 과자는 그대의 웃음과 같소.

다과의 속이 내가 모르는 설탕 혼합물로 채워져 있듯, 그대의 마음에도 내가 모르는 다른 달콤함이 숨어 있을까 또 겁이 나는구려. 원체 어여쁜 꽃에 많은 벌레가 서성이는 법이니 조심하길 바라오.


보낸 것 중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알려주시오.

시간이 된다면 연락 주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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