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조각
사계절 중 어느 계절이 좋냐고 물으면 늘 봄이라고 얘기했어요. 추운 거 보단 더운 게 낫다고 생각하거든요. 밖에서 더울 땐 벗으면 그만이지만, 꽁꽁 싸맬 옷이 없을 땐 답이 없어요. 그저 견뎌내는 수밖에요. 봄은 추운 기운이 조금씩 따뜻해지는 때잖아요. 그래서 더 좋았는지도 모르겠어요. 따뜻한 햇빛에 시원한 바람, 그리고 파릇한 풀잎들과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니까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가장 예쁜 계절은 가을 같아요. 뭔가 알록달록함이 주는 매력이 더 재미있더라고요. 초록색과 노란색, 빨간색 단풍들이 오묘하게 섞여 만들어내는 조합이 아름답단 말이죠. 그래서 단풍놀이를 가는가 봅니다.
며칠 전 친구들과 피크닉을 다녀왔어요. 점심을 챙겨 먹고 난 후 살짝 추운 날씨를 달래기 위해 차를 끓여 먹기도 했고요. 바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산책도 했답니다. 햇빛이 내리쬐는 곳은 따뜻하고, 그늘진 곳은 서늘하다고 느낄 정도로 추운 걸 보니 정말 가을이구나 싶었어요. 늘 가을은 정신없이 스쳐가는 계절로만 생각했기에 가을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어요.
하고 싶은 꿈을 찾겠다고 무작정 일을 관두고 흘러간 시간이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1년 전의 가을만 봐도 바쁜 일상에서 잠시 스쳐 지나는 어정쩡한 날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네요. 생각해 보면 올해는 계절을 온전히 다 느끼고 즐긴 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일까요? 가을이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었나, 다시 하늘을 바라보게 돼요. 그동안 이런 사소한 계절의 변화마저 관심 없이 무심하게도 살았구나.
소중한 찰나의 가을은 이제 곧 겨울이란 계절 속에 스며들겠지요. 그런데 하나도 아쉽지 않을 거 같아요. 올해는 가을을 느꼈기 때문에요. 이런 작은 여유 또한 나중에도 잊힐 테죠. 그럼 억지로라도 계절을 신경 써 보고 싶어요. 애매한 계절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잠깐의 찰나에만 만날 수 있는 가을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