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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택 Dec 07. 2020

씨 뿌리는 비유

산책의 시간 / 의사 누가와 함께하는 09


  1.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


  만약 당신에게 값비싸고 귀한 씨앗이 있다면,

  그 씨앗을 어디에 뿌리겠는가?


  길가나 돌밭, 또는 가시떨기가 무성한 밭에 아무렇게나 뿌리지 않을 것이다. 기름진 땅, 그것도 잘 일군 밭에 정성스럽게 뿌릴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씨앗을 가려서 뿌리시지 않는다. 그 씨앗이 아무리 귀하고 값비싼 씨앗이라 할지라도, 모든 땅에 골고루 뿌려 주신다. 누가복음 8장은 바로 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나아온 무리를 향하여 비유로 말씀하셨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5-8절).




  예수님의 비유에는 어려운 내용이 하나도 없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그래서 너무도 당연한 말씀만 하셨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당연한 내용을 말씀하신 그분의 의도, 즉 그 비유 속에 담긴 참 의미는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제자들은 수수께끼 같은 그 비유의 속뜻을 알기 위하여 그분께 여쭈었다(9절). 이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비유의 속뜻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에 관한 것이었다.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씨앗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씨앗이 떨어진 길 가, 바위 위, 가시떨기 속, 그리고 좋은 땅은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마치 비와 눈이 온 땅에 내려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듯이, 온 천하보다 귀한 말씀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허락해 주신다.




  문제는 그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는 네 종류의 마음이 나온다. 그중에 세 개는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그 비밀의 문을 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된다. 같은 씨앗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은 그 마음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지 못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2.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하는 마음


  (1)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지 못하는 첫 번째 씨앗은, ‘길가’에 떨어진 것이다. 길가에 떨어진 씨앗은 사람들에 의해 밟히거나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서 먹어 버린다(5절). 이것은 예수님의 수수께끼 풀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마귀가 와서 그들이 믿고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10절).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이 마음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존재, 즉 마귀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다. 마귀가 빼앗으러 올 때 그 말씀을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지켜야 하는데, ‘길가’ 같은 사람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방치한다. 그래서 길가에는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그 결과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반응으로 일관하거나, 설사 반응하더라도 나쁜 반응, 즉 배척과 대적으로 일관하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멀어져 버린다.




  성경은 그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렇게 경계하고 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우리가 마음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생명의 근원이 바로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거기에서 생명이 아닌 죽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마음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 그에 대한 답도 성경이 제시하고 있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약 4:7-8). 하나님께 복종하고 그분을 가까이하면 그 마음을 지킬 수 있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친히 지켜 주신다.




  (2) 하나님 나라에 이르지 못하는 두 번째 씨앗은, ‘바위 위’에 떨어진 것이다. 그 씨앗은 비록 싹이 난다 할지라도 습기가 없으므로 금방 말라 버린다. 그래서 농부는 귀한 씨앗을 바위 위에 뿌리지 않는다. 이 비유는 말씀을 들을 때 기쁨으로 받지만,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련 당하게 되면 배반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앞선 ‘길가’보다는 상황이 조금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금방 말라 죽는다는 점에서는 오십보백보가 아닐 수 없다.


  사실 ‘시련’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지이기도 하다. 그 사람에게 시련이 오는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련 가운데 시달리셨다. 이 세상 가치관과 정반대로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삶도 정반대의 모습을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이 싫어서 계속 고난으로 압박하였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그분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 버렸다. 그래서 그분을 따르는 제자인 우리의 정체성도 이를 상징하는 ‘십자가’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은 그 시련을 무서워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믿음을 배반하기도 한다.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멀어져 버린다. 그래서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말라고 경계하셨다. 사도 바울은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서 그분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라고 이야기할 때, 그뿐만 아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라고 권면하였다. 환난 자체는 즐거움이 될 수 없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이루는 매개체가 되므로, 그로 인하여 즐거워할 수 있다(롬 5:1-4). 그 소망은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밀, 즉 하나님의 나라이다.




  (3)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지 못하는 세 번째 씨앗은, ‘가시떨기 속’에 떨어진 것이다. 이 씨앗은 함께 자란 가시에 의하여 성장 기운이 막혀 버린다. 이 씨앗은 처음에는 말씀을 받지만, 살아가는 동안 세상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한마디로 두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현대인들은 ‘시련’보다 이런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다. 확고하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염려가 있을 수 없다.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더 아름답게 입히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것들보다 더 귀하게 보시고 더 소중하게 돌보시므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는다(마 6:25-34). 따라서 ‘염려’는 의심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그 염려는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게 한다(약 1:6-8).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 또한 ‘향락’은 그 자체로 죄악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저주와 심판이 임하게 된다.



  3. 하나님 나라에 이르는 마음


  앞선 세 종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이 어떤 것이 되었든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할 수도 그 나라를 선물로 받을 수도 없다. 하지만 예수님이 네 번째로 제시하신 ‘좋은 땅’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그 나라를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좋은 땅’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사람이다(15절). 주님은 그 결실의 양이 ‘백배’나 된다고 약속하셨다(8절). ‘백배’는 말 그대로 백 곱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속뜻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주 많다’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 결실은 이 땅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합해도 비교가 안 될 정도의 양이다.




  그렇다면 ‘좋은 땅’의 조건인 ‘말씀을 듣고 지킨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떠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그 뜻이 뒤에 소개되는 ‘등불 비유’와 ‘하늘 가족’ 개념 속에 들어 있다. 먼저 ‘말씀을 듣는다’는 말은, ‘어떻게 들을까 스스로 삼가는’ 것을 의미한다(18절). 이것은 말씀을 들을 때의 태도가 주의해서 듣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교만을 버리고 ‘겸손하게 듣고 진실 되게 믿는’ 것이다. 또한 ‘지킨다’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뜻한다(21절). 듣고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고 헛된 것이다(약 2:17,20).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약 2:26). ‘좋은 땅’을 소유한 사람은, 말씀을 겸손하게 듣고 진실 되게 믿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삶 가운데 그대로 실천하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러난 실제가 되고 현실이 된다.



  4.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주님은 자기에게 나온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신 후, 의미심장한 말씀 하나를 더하여 외치셨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8절). 여기서 ‘외치다’라는 단어는 능동태 미완료 직설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한 번만 외치신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외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이 이렇게 여러 차례 외치시면서 염두에 두셨던 것은, 그것을 듣는 사람들의 그렇게 하지 않는 태도였다. 다시 말해서 ‘길가’나 ‘바위 위’, 그리고 ‘가시떨기 속’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에게, ‘좋은 땅’과 같이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라고 촉구하시기 위하여, 그렇게 목소리를 높여 여러 차례 무리에게 외치신 것이었다.




  주님이 염두에 두고 계속 외치셨던 말씀은 이제 우리를 향하고 있다.


  만약 우리의 마음 밭이 길가와 바위 위와 가시떨기 속 같다면, 그것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 밭이 좋은 땅이 되도록 새롭게 갈아엎어야 한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교만을 버리고, 겸손과 진실함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어야 한다. 또 듣고 믿은 대로 삶 가운데 실천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의 외침 앞에 올바르게 반응하는 길이다. 주님은 바로 이를 염두에 두시고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셨고, 그 끝에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계속 외치심으로써 우리의 변화를 촉구하셨다. 만약 우리가 그 촉구를 온몸으로 거부하면, 우리는 마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시련 당할 때 그분을 배반하고, 이생에 대한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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