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자 농부 Oct 19. 2021

틈 6화

훤이 여자 친구와 통화하는 사이 아운은 금요일의 거리를 바라본다.

“응, 대학 동기. 있잖아 연수야, 내가 집에 갈 때 전화할게.”


훤의 여자 친구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아운은 그제야 대학 때도 훤이 늘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갈아타는 연애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연애와 연애 사이의 기간이 길지 않았다.  


“여자 친구?”


“응... 미안. 아까랑 비슷해?”


의자에 앉은 훤은 영 자신 없단 얼굴로 물었다. 아운은 훤에게 다가가 후드티를 뒤로 조금 잡아당겨 아까와 비슷한 모양으로 주름을 연출했다. 아운이 몸을 앞으로 숙여 옷을 매만지는 사이 훤은 왼쪽으로 시선을 돌려 전기난로의 주홍색 불빛을 바라보았다. 아운의 머리카락이 훤의 어깨와 가슴을 스칠 때 옅은 시트러스 향이 났다. 훤은 고개를 돌려 아운을 바라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제 정면을 바라봐봐.”


한 발작 뒤로 물러난 아운이 훤의 머리카락을 아까와 비슷한 모양으로 매만져주었다.   


“여자 친구랑은 어떻게 만났어?”


“소개팅.”


“난 소개팅은 못하겠더라. 학교 다닐 때 두 번 해본 게 전부야. 형제가 어떻게 되는지, 어느 동네 사는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이런 거 물어보면서 속으론 이 사람과 키스는 할 수 있을까? 이런 걸 생각해야 하잖아. 재미없어. 사실 이미 보자마자 알잖아. 이 사람 하곤 절대 키스할 수 없어. 이런 건. 근데도 바로 일어날 순 없으니 의미 없는 대화를 하는 거지. 게다가 그런 사람은 대게 매력이 없어서 친구로 남자고 해도 거절하게 될 확률이 높으니까.”


“그런가? 물론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확률이 작다는 건 인정해. 그런데 소개팅 아니면 사람 만나기가 어렵잖아.”


“난 혼자 일하니까 더 그렇기도 한데 그래도 싫어. 그 시간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백배는 재밌어. 아니면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호크니 인터뷰집을 읽는 게 낫지.”


아운은 붓과, 오일, 물감 따위가 잔뜩 들어있는 바퀴 달린 3단 트레이에서 책 한 권을 꺼내 훤에게 들어 보였다. 여기저기 물감이 묻은 책 표지 속 나이 든 화가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 초여름을 칠하고 있었다.


“호크니가 게이가 아니었다면 난 태평양과 대서양 그 어떤 바다를 건너서라도 고백을 백번도 더 했을 거야. 그러고 보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려면 정말 많은 조건이 들어맞아야 해. 일단 성적 지향이 맞아야 하고, 서로가 서로의 취향이어야 하며, 수많은 우연으로 서로를 발견해야 하니까.”




그림: tae-hope https://www.instagram.com/barista_painter/

이전 26화 틈 5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