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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의 꽃 Jan 31. 2021

나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꽃, 장미

장미-2



어느 순간부터 나에 대한 설명을 자꾸만 하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때면 자의식이 용수철처럼 튕겨올라와 나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나는 이런 성격이라서

나는 이런걸 잘 못해서

나는 이런 경험이 있어서

나는 이런 사람이라서 

등등 


이러한 나에 대한 수많은 전제조건이 붙고

그 뒤로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마도 나의 내면 깊은 어딘가에,  나를 좀 더 알아봐 주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나에 대한 설명을 하게 만드나 보다.


어떠한 설명 없이 '지금의 나' 로서만  타인 앞에  존재할 수는 없을까.


가끔 장미를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장미는 누구에게도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다.

야생 장미이든 재배되는 장미이든, 크기가 다르고 , 색상이 다르고 형태가 달라도 누구나 단번에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장미를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사람이더라도

장미를 마주 하게 된다면 " 아 이게 장미구나"라고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장미는 오로지 자신의 존재만으로

많은 이들의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향기에 취하게 하고, 겹겹이 쌓인 신비로운 꽃잎에 사로잡혀 넋을 놓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어느 이른 여름 아침, 도심 속 공원을 거닐다  장미 덤불을 살짝 스칠 때 훅 퍼지는 예상치 못한 향기는 어느 꽃과도 비교할 수 없도록 자신의 존재를 강하게 각인시켜준다.


그저 존재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자신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꽃이 바로 장미이다.


또한 장미 한 송이를 건네는 것이 어떤 말 보다 많은 의미를 전달할 때가 있고 장미꽃 한 다발이 모든 것을 대신할 때가 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감정을 장미 100송이에 담아 전달하기도 하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 서 정봉이가 만옥이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 동안 손이 빨개지도록 손에 꼭 쥐고 있던 장미꽃 한 다발처럼 순수한 진심을 온전히 대변해주기도 한다.

빨강 장미 한다발이 그녀를 향항 그의 모든 마음을 대신한다



이처럼 장미는 존재 자체가 자신의 전부가 되는 자존감이 높은 그런 꽃이다.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어서

스치기만 해도 향기가 각인되고

관심을 원해서

가던 발걸음도 멈추게 할 만큼 매혹적인 것이 아닌

난 나야, 지금 모습이 그냥 나일 뿐이야.

라며 별 다른 설명 없이 고고하고 담담하게 말한다.



그저 지금의

본인 자체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의미하고

자신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시킬 수 있고

현재의 나가 내 전부가 될 수 있는

그런 장미와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언젠가 나도

'지금의 내 모습이 그냥 나야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해?" 라며

고고하게 말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장미를 동경의 눈빛으로 오랫동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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