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비 촬영을 끝낸 후, 나는 처음으로 3일 연속 휴무를 가질 수 있었다. 그때는 일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넘어가는 시점이었는데 나는 그동안 휴무를 가져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주말을 반납하는 건 일상이었고, 어쩌다가 하루 쉬게 되면 그 하루가, 평온한 일상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휴무는 보통 그 전날에 카톡방에 통보를 해주는데, 휴무 통보를 받은 날에는 신이 나서 친구들과 약속을 잡곤 했다. 일을 하면서 신경 쓰였던 부분 중에 하나가 친구 문제였다. 나는 휴무가 정해져 있지도 않았고, 퇴근도 항상 늦어서 일하는 시간에 친구와 연락을 하거나 따로 만날 시간이 적었다. 갓 스무 살이 된 우리는 그때 가장 자주 모이고 술을 마시고, 아직 진로를 정하지 않은 친구들끼리 수다 떨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자리에 항상 끼지 못하는 게 어린 마음에 내심 신경 쓰였다. 선배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일하면 있던 친구도 없어져, 일하면서 만난 사람이 친구 되는 거야” 이 말이 그렇게 내 얘기 같았다.
꿀같은 휴무는 그렇게 사라졌다. 나는 그사이 핸드폰을 바꿨다. 전에 쓰던 폰은 갤럭시 s3였는데, 그 당시 줘도 안 쓰는 공짜폰 수준이었다. 직업 특성상 사진으로 기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카메라 성능이 좋은 폰으로 바꿨다. 어쩌면 그건 앞으로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또 한 번의 다짐이었다. 선배들이 그 사실을 내게 전해주기 전까지는 정말로 그랬다. “정현아 너 팀장님이랑 둘이 케이콘 가네?” 솔직히 처음에는 그냥 ‘아~그렇구나’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생각해보니 그 말은 내가 모든 일을 다 해야 된다는 말이 됐다. 곧 있을 컴백에 앞서 케이콘 일정이 잡혀 있었고 어느새 케이콘이 2주 남짓 남은 상황이 되었을 때, 나는 결국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13명이나 되는 멤버의 옷을 내가 다 챙기고 갈아입히고 사진을 찍고 핏을 잡아주고 짐을 싸고 다림질을 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선배들도 의외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처럼 경력 없는 친구하나 데리고 팀장님이 가신다고?? 그것도 일본 케이콘을??
그길로 나는 부장님께 면담을 잡았고, 케이콘 가는 거 못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내 의견은 정해진 계획에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고 끝났다. 이미 비행기 표와 여권이 나갔고, 스텝 변경은 없을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거의 울먹이면서 못 가겠다고, 나는 못한다고 말했다. 팀장님과 단둘이 가는 건 알고 있냐며 호소했다. 나는 이미 팀장님 눈만 마주쳐도 두려워하는 상황이 되어있었고, 팀장님 말소리만 들어도 몸이 움찔하는 정도의 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내가 왜 못 가는지 차근차근 얘기했다. 첫 번째로, 나는 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능숙하지 못했다. 둘째, 나는 거기에 가면 모든 일을 도맡아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었다. 셋째 나는 케이콘 스케줄 전에 그만두고 싶었다. 부장님은 팀장님과 말해보겠다는 걸로 결론을 내렸고, 팀장님이 그냥 가면 된다고, 너는 아마 할 일 거의 없을 거라고 했다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걱정하지 말라는 게 끝이었다.
나는 그날부터 슬슬 긴장을 탔다. 선배들은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계속 위로와 응원의 말을 건넸으나 그것은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저 어떻게 팀장님 기분을 잘 맞추면서 실수하지 않고 2박 3일 케이콘을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케이콘에서 한 착장만 입는 줄 알았는데, 스페셜 무대 착장이 추가되었고, 레드 카펫 의상이 추가되었고, 그 후에 디스패치 촬영이 추가되었고, 끝판왕 공항패션까지 추가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다섯 착 (총 65벌)의 의상을 책임지고 챙겨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선배들은 걱정이 늘어만 갔다. 과연 나 같은 어리버리한 신입이 살아서 돌아올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듯했다. 그러고는 어쩔 수 없으니 최대한 빠릿빠릿하게 하라는 충고를 해주었다. 눈앞이 깜깜했다. 매일같이 퇴근길에 내가 입혀야 할 옷들을 멤버별로 시뮬레이션 했고, 버스 손잡이에 넥타이를 묶는 연습을 해가며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할 케이콘을 받아들였다. 그건 케이콘 후에 그만둘 각오를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까지 불태우고 후회 없이 가겠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