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지원' 사용하는 아빠의 주절주절
1. 2023년 가을, 셋째 출산 예정일 한 달 전 정도부터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 제도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공무원의 작명센스의 한계인지,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한 건지,너무나 입에 안 붙는 명칭.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할 때는 “육아기 단축근무” 정도로 줄어서 부르고 있다.
만삭의 아내가 연년생 두 자매를 가정보육 하고 있던 상황이니 힘들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2키로 내에 아내와 사이가 좋은 시부모가 살고 있어도, 남편이 도보 7분 거리의 직장을 다녀서, 아이들의 목욕부터 예방접종, 점심 저녁 메뉴 포장배달을 다 해와도 몸이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우와. 그럼 반일半日만 일하고 퇴근하는 거야? 가족들이 좋아하겠네.
월급은 그대로 주고?“
여기까지 물을 땐, 부러운 기색이다.
- 아니요. 월급도 반이죠.
“그게 무슨 지원이야?”
- 정부에서 월급 깍인 거의 일부를 지원해줘요.
“얼마나?”
-급여에 비례해서 상한선을 정해서 주는데 ㅇ십만원 정도 줘요.
눈을 반짝이며 흥미를 보이던 선배의 얼굴에 실망하는 기색이 확연해진다.
“아… 그래도 먹고 살만해?“
걱정의 눈초리로 변했다.
- 적게 쓰면 되요. 세척당근 먹던 거 흙당근 먹고 하면 되죠. ㅎㅎㅎ
대충 얼버부린다.
난 소위 '비빌 언덕'이 없는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결혼식부터 신혼집까지 어떤 지원도 기대하지 않았다.
대학원을 갓 졸업한 아내와 결혼을 했으니 그녀가 재산이라고 부를만한 건 학위 말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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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내가 우리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발달심리학적 이론에 근거에서 1-4세에 시간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이 선택의 주된 목적은 아내를 위해서였다.
우리 가정의 초석础石인 아내.
이 가정은 아내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으니 나도 아내도 굉장히 중요한 기초이다.
어쩌면 그런 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보통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과 비교하면 나의 선택은 '극성'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런 제도를 모르거나 직종의 특성, 근무지의 특성상, 사용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거다.
나의 아내는 주사 맞는 게 출산하는 것보다 무섭다고 할 정도로 …(네, 잘못 적은 게 아니라 실제 이런 말을 합니다) … 내 논리체계로는 100% 이해 되는 사람이 아니다.
엄청 강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주기적으로 그 강인함이 어이없을 정도로 나약함으로 바뀌기도 하고, 그 주기가 또 비정기적으로 널뛰기 할 때가 꽤 있다.
예를 들자면 아내는 집안이 지저분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난 부모님 책상 위에 책이 여러 개의 피사의 탑을 쌓여 있던 가정에서 자라서였을까?
어머니께서 살림 정리를 문이 없는 책장에 정리하는 스타일이셔서 였던 걸까?
난 아이들이 집안을 아무리 어질러 놔도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외지근무가 잦았던 장인어른은 집에 오실 때마다 집안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하셨다고 한다.
2023년 봄, 코로나19롤 인한 국가'봉쇄'와 연년생 자매의 출산과 양육으로 3년 넘게 부모님을 봽지 못했던 아내. 그런 아내를 위해 10년근속 휴가 10일과 연차 14일을 쓰고 처가에서 함께 지냈다.
장모님께서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 동안에도, 하루를 마무리하고 장모님이 샤워하시는 동안에도 바닦을 닦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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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속 상승하던 주택가격을 고려하면 경제적으로 미련한 선택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어차피 이런 상승율이 유지된다면 한 푼 두 푼 모은다고 집을 살 수 있는 것 같아보이지도 않았다.
'무주택자'라는 단어로 표현해야 하는 삶의 일부분.
'전세자금 대출'로 이어지고 그게 고정지출의 큰 부분을 차지 한다.
"아니, 돈 많이 벌어서 집 사야지!!" 라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런데 거시경제 흐름상, 내가 월급을 200%로 늘려도, 50%로 줄여도 빠른 시간 안에 '무주택자'가 '유주택자'로 전환하는 건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그게 대한민국의 부동산가격이다.
'부자가 되야지!' 하며 투자를 시작하는 친구들도 봤다.
모든 투자엔 리스크가 따르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High Risk, high return)"란 말이 있지만, 그걸 잘못된 논리로 '하이 리스크 => 하이 리턴'이 된다고 착각하면 안된다. 위험도가 높다고 높은 수익을 보장하는 게 아니다. 그냥 'Hi ! Risk' 하며 위험을 맞이하게 될 수 있다.
결혼을 준비하던 시기 보유하고 있던 8천만원 대 이상의 주식이 곤두박질 쳐서 묻어두다가, 암호화폐 회사에서 일하며 그 자산이 3억 이상 되었다고 자랑한 친구가 있다. 그리고 그 암호화폐는 1년 후, 3억은 사라지고 마이너스만 남게 된 슬픈 사례가 있다.
내가 선택한 건 '시간의 경영'이란 관점에서 '시간의 투자'였는 지도 모르겠다.
재산은 워런 버핏과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그가 중시하는 같은 '시간'에 초점을 맞춘 거다.
그는 블룸버그 인터뷰(링크)에서 이렇게 말했다.
Money has no untility to me, time does
이 유틸리티Utility 란 단어를 사용한 형식 때문에 번역하기 어려운 말이지만 대충 번역해보면 이렇게 된다.
안1) 돈은 내게 유용하지 않다. 시간이 그렇다.
안2) 돈은 내게 효용가치가 없다. 시간이 더 유용하다.
안3) 시간은 나에게 유용하지만, 돈은 그렇지 않다.
이제 막내가 6개월.
돌 이후에도 힘들겠지만,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지원을 해보기로 한다.
1-2년 휴직이 아니기 때문인지, 중간에 복귀하는 건 어렵지 않다.
(사실 작년에도 육아휴직을 하고 싶었지만 같은 업무를 하는 담당자가 '가족돌봄휴가'를 쓰게 되서 불가능한 것도 있었다. 이번에는 그 분이 복귀 했다가 아예 퇴직을 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만 생각해서 육아휴직을 한다고 하면 그건 '대체불가인력'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거절할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4. 작년에 신청한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지원' 기간이 만료를 앞두고 아내와 상의했다.
"내가 풀타임으로 근무해도 괜찮겠어?"
- 좀 힘들겠지.
"그럼 계속 이렇게 할까? "
- 셋째가 좀 더 클 때까지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
단축근무 기간중에 차를 타면 우는 셋째의 케어를 위해 준중형 차량에서 중고미니밴으로 바꿨다.
미니밴이라 기존 차량의 3-4배 정도 연비가 나쁘다.
자산 증식은 멈췄지만 그래도 다행히 마이너스 경제로 돌입하지 않은 상태.
그래도 아직 살만한 것 같다.
백만원이 넘는다는 영어유치원 보낼 생각도 없고, 300만원짜리 영어전집과 영상콘텐츠 세트를 구매할 계획도 없다. 다행히 아빠가 영어를 곧잘 하니깐. 그런 교육비용의 투자는 필요하지 않다.
전세자금대출의 이자가 나가지만 무리해서 MAX(최대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감소한 수입에도 체감하는 영향은 없다.
그렇게 연장을 결정하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지난 번엔 첫째로, 이번엔 둘째로 신청했다.
그래도 늘 경제적 현실을 등한시 하지 않기 때문에 근무시간을 조금 늘렸다.
기존의 8시-12시 근무시간에서 한 시간 일찍 출근, 30분 늦게 퇴근.
1시간 30분의 '급여'가 더 늘어난다.
그게 연동되어 있는 다른 것에도 영향을 미쳐서 수입이 늘어나긴 한다.
어떤 유대인 랍비가 말했다.
인생의 큰/중요한 변화는 할 수 있다면 같은 시기에 겹치게 하지 말라고.
남편이 된 후, '큰 변화'로 규정할 수 있는 건 결혼, 출산, 이직, 이사 등이 있었다.
결혼, 출산을 앞두고 이직을 한다거나, 출산과 이사가 겹치게 한다거나.
(결혼 후, 싱가포르의 모회사의 이직 오퍼가 있었지만 지금의 '워-라-밸 Work-Life Balance'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도전하지 않았었다. 좀 더 야망있는 나를 기대하는 친구는 해외로 나갔으면 좋겠다며 부추겼지만 큰 변화들을 겹치게 하는 게 우리 부부에게 미칠 영향을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보자니 시행했더라면 우린 갓 정착한 곳에서 코로나봉쇄를 맞이했을 거라는 것. )
피할 수 없었던 건, 이번에 출산 후 1개월이 되지 않아 이사를 한 것.
원래는 출산 전 1개월 전을 목표로 했으나 부동산 계약시 예상 외의 변수로 부득이하게 그리 되었다. )
5. 단축근무하는 '육아 대디'의 시즌 1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단축근무하는 육아 대디 시즌 2도 아마 비슷할 거다.
그 사이 토요일 2시간 정도 영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 프로젝트에 투입된 것도 있고, 이번에는 브런치북이라는 목표도 있어서 아마 더 빠르게 지나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아이가 자라서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 미래에 아빠가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삶을 살아왔는 지 남기고 싶다.
아이들이 자라서 나에게 할 질문들에 대해 미리 준비해서 준비된 답변을 남겨주고 싶다.
아직은 '순수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10년 후의 나는 어떻게 될 지 몰라서?
지난 10년간, 대학생 시절보다 좀 더 지혜로워졌다고 생각한다.
다음 10년간도 그 추세를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예전엔 그 영향을 받는 사람이 나였지만 지금은 나의 가족이 된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내도 아이들도 힘들지 않을까.
시즌 2의 목표는 육아와 무관한 다른 관심사를 주제로 한 '브런치북 1권'. (속으로는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