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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빙산 May 03. 2024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

체력과 성품의 관계

[아이의 말]

샤워 시키는 중에 첫째가 물었다.


“아빠,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

-왜?


”…… (고개를 떨군다) ”

- 엄마가 화를 자주 내서?“


”(끄덕끄덕)“

- ㅇㅇ아, 엄마가 나쁜 사람인 게 아니라. 엄마가 피곤해서 그래.

ㅇㅇ이도 졸리면 짜증나고 울고 화내지?

엄마도 그럴 수 있어.

그렇다고 ㅇㅇ이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냐.





육아를 하다보면 가끔 자아성찰 중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1. 난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화가 잘 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화를 내려면 감정의 동요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큰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삶에 많지 않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타인이 내 감정을 좌지우지 하는 걸 허용하지 않도록 높은 성벽을 쌓아놓고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이런 고요한 호수 같은 내 정서에 파도를 일게 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 정도이다. 워낙 다른 성격과 행동 양식의 여동생 정도. 긴 인생을 함께 해온 ‘분노의 마일리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그런 내가 결혼 후 아이를 키우면서 이상하게 화가 날 때가 있었다.

평소라면 ‘그럴 수 있지- (토닥토닥)’ 할 수 있는 많은 순간에 짜증 섞인 질책을 내뱉었다. 큰 소리로 버럭을 하지 않고 읖조리는 수준이었던 게 그나마 다행이다.



2. 분명 같은 상황인데 시간대가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내 반응은 달랐다.


“한 번 말해서 듣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아직 아이잖아.

아직 자기 감정 조절 능력도 부족하고, 충동을 억제하는 것도 미숙하고.

어른이 이해해줘야지”


첫째를 키울 때는 이런 어른스러운 반응으로 아내에게 ‘오빠는 정말 애를 잘 보는 것 같아.“ 라는 칭찬을 들었던 때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큰소리가 나올 때가 있다.


”일루와 ! 아빠가 한 번 말했다.

어서와.

그거 내려놓고!

아빠가 두 번 말했어!


ㅇ.ㅇ.ㅇ (세글자로 호명하기) !

세번 말했다!

아빠한테 혼날래?! “


적어놓고 나니 너무 부끄럽다.

CCTV가 있었다면 ㅇ은영 선생님께 지적 받을 것 같은 순간들이 늘어나는 거다.


나만 그러는 게 아니다.

아내도 더 예민하게 아주 사소한 것에 처음부터 ’5단 기어‘의 분노게이지로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가 있다.


3. 그러다가 우리가 요즘 몇 시간 자고 있는 지를 생각해보니 답이 나왔다.


난 요즘 3-4시간을 겨우 확보하고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서 얼굴을 맞아가며 깨고, 다시 잠들었는데 다시 맞으면…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서 글을 쓴다거나 전자책을 읽다가 졸리길 기다리는 거다.

그렇게 일어난 하루는 피곤하다.

회사에서야 대부분의 업무를 컴퓨터를 통해 텍스트로 구성된 문서로 처리하니 감정이 드러날 필요가 없다. 직장을  감정의 표출공간으로 삼는 건 ‘프로패셔널’ 한 게 아니다. 10년 정도 일하면 이런 건 터특해두는 게 나와 타인의 정신건강에 좋다. (물론, 이걸 모르고 부하직원의 우울증에 기여하는 상사도 아직 많이 존재할 거다.)


이런 날은 저녁 8시가 되면 이미 체력의 한계이다.

아이들을 씻기고 양치 시키고 재워야하는데, 아이들은 아이들이니 기분이 좋으면 졸려도 신난 상태이다.

씻자니깐 ‘내가! 내가!” 하며 옷을 벗는 둘째.

화장실로 안 들어가고 반대방향으로 달려간다. 꺄르르.

글을 쓰며 머리에 떠올리니 유쾌하고 귀엽고 재밌다.


하지만 내 마음 구석엔’빨리 씻기고 자고 싶다 (혹은 글 써야하는데/ 책 읽고 싶은데)’ 라는 마음이 깔려있고, 이미 피곤한 몸 상태에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거다.

아이들이 ’빨리 씻고 재우는 업무’의 효율을 저하시키는 것에 짜증이 나는 거였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시작된 샤워가 웃음을 잃고 나서야 욕조에 들어가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특히 이사 온 후, 1-2개월 사이 자주.


지금 돌아보니 그랬던 거다.

난 피곤했고, 하고 싶은 게 있던 거다.



4. 아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직 7개월 짜리 막내에게 수유도 하고 있는데, 밤에 잠을 깨면 수유를 한다.


잠이 부족해서 더 쉽게 화가 나는 거였던 거다.

원래 성격이 급하지만 그래도 결혼 후 그걸 자각하고 고치고 싶어한다.

차분한 남편과 자기 태도를 비교하며 좋은 점을 닮아가고 싶은 거다.


하지만 어디 변하고 싶다고 변하는 게 쉬운가.


아내가 아침부터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대하고, 팔 벌리고 아침 인사를 하는 남편에게 안기는 아침도 있다. 그런 날은 주로 내가 출근하지 않는 날, 충분히 잔 날.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이 엄마 아빠가 피곤하다는 걸 알게 되려면 아마 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런 엄마 아빠의 피곤을 배려해주려면 더 기다리야겠지, 그 전까지는 어른들이 아이들을 더 배려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니 어쩔 수 없다.


‘멘탈 조절’이 더 능숙한 아빠가 더 힘내야지.


둘이라서 힘든 결혼 속에 살고 있는 사람, 살았던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육아는 머리수, 쪽수에서 밀리지 않는 경우가 유리하다. 단순히 수적우세를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장점이 있다.


나의 부족한 점을 상대가 채워줄 수 있다.

상대의 부족한 점을 내가 채워줄 수 있다.

나의 단점이 아이들을 대할 때 체력의 한계가 유발하는 부정적 정서의 표출을  배우자가 지적해주고 모니터링 해줄 수 있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두 부부가 아이를 낳고 기르도록 되어있나보다.


아이들 키우느라 고생하는 육아동지님들 화이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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