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은둔형 외톨이 시절이 있었다. 우울증이 시작되었던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기면증이라는 병으로 인해 사회생활이 힘들었고 점점 무기력해졌다. 그 병은 게을러 보이고 무기력해 보이는 병이며 그 병을 가진 사람들은 주위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기 어렵다. 기면증 진단을 받은 후 의사는 내게 기면증 환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는데, 그건‘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병을 알리기’였다. 이런 행위는 내가 게으르고 무기력한 이유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변호라 해야 한다.
하지만 내 처절한 변호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잠을 스스로 조절하지 못하는 게 무슨 큰 병이라도 되냐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나라에서 내게 붙여준 산정특례자 딱지는 그들에겐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 병이 아니더라도 요즘 사람들은 누구나 피곤하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피곤하고 힘든 일에 대한 나의 변호는 이미 그들에겐 변명이라 생각될 뿐이다. 여전히 나는 함께 무언가를 하기에 부적절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다. 그건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상황일 뿐, 그들이 나를 배려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지 않은가.
어린 시절부터 집에는 늘 강아지가 있었는데, 내가 아는 한 그 강아지들은 착하고 순한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난 그들의 에너지가 힘겨웠다. 사람들은 강아지를 키우면 우울증 증상이 호전된다고 말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들로 인해 우울해지고 있었다. 내 우울증의 원인이 외로움이 아니라 무기력증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우울증엔 강아지를 키우는 일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은 대부분 맞지만 상황에 따라 맞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 나를 거기에 맞출 필요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강아지조차 힘겨워하는 무기력한 나를 보며 스스로 자괴감에 빠지곤 한 것이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아주 잠시였다. 강아지들은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그저 끊임없이 주인의 사랑이 필요했고, 그 기대를 져 버릴 수밖에 없는 나는 못난 주인이었다.
동물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다들 강아지를 끔찍이 가족처럼 여기던데 왜 나는 그러지 못했을까. 왜 내가 키우는 강아지들은 다른 강아지들과 달리 이렇게 내게 짐스러울까. 그런 프로그램에 나온 강아지들은 개인기도 많았다. 나처럼 무기력한 주인인 나는 결코 내 강아지를 그런 훌륭하고 똑똑한 강아지로 만들 수 없었다. 그들을 보며 박수치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무기력한데다가 강아지 훈련도 제대로 시키지 못하는 무능력한 사람처럼 보였다.
헌데, 요즘 나오는 한 프로그램에서는 착한 강아지가 아닌 일명 문제 강아지가 나온다. 강아지도 성격이 제각각이란다. 주로 대부분 사회적인 동물이지만 아주 독립적인 강아지들도 있고 가끔 주인을 해하는 놈들도 있다. 하지만, 결국 문제 강아지를 만드는 건 대부분 문제 있는 주인이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그저 주인이 전부인 강아지들은 주인의 무기력함에 좌절감을 느끼게 되며 문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사회적인 동물의 기본 심성인가 보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타인에게 관심을 받고 싶은 만큼 잘 보이려 애쓰게 되고, 또 누군가에게 공감 받고 사랑 받길 원하므로 그로인해 스트레스도 쌓여 간다.그런 관계는 마치 사랑이 필요한 강아지처럼 주변인들을 힘겹게 한다.
요즘 사람들은 만성적으로 무기력한 사람이 많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독립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고양이는 그 성향 때문에 집사들에게 ‘주인님’이라는 비아냥을 듣고 있지만 사실 그들은 주종관계가 아니라 친구일 뿐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게 좋은 이유는 그들과의 관계 때문이다. 주종관계일 때는 주인이 의욕적이어야 관계 회복이 되겠지만, 친구 사이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지 않은가.
고양이는 많은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 고양이는 아무리 집에 가족들이 많더라도 단 한명만을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들이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변을 치워주는 사람이다. 고양이는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들키지 않기 위해 변을 모래 깊숙이 파묻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매일 보고 치워주는 이를 믿고 따르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깊은 교감을 나누지 않아도 그저 변을 치워주는 것만으로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 그게 바로 고양이가 생각하는 친구인 것이다.
많은 친구가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오히려 많은 친구는 나를 힘겹게 할 뿐이었다. 그들에게 줄 사랑이 내겐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성이 좋은 사람이 되도 좋겠지만 믿고 내 치부를 드러낼 수 있는 단 한명의 친구만 있으면 괜찮지 않을까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