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땐 잘 먹어야한다. 엄마는 감기에 걸려 열이 조금이라도 나면 죽을 쒀서 억지로라도 입에 넣어주셨다. 엄마는 그때마다 아플 땐 잘 먹어야 낫는다, 약을 먹으려면 뭐라도 먹어야한다고 했다. 엄마가 쒀주시던 죽은 요즘 프랜차이즈 죽 가게에서 파는 이것저것 재료가 풍부하게 담긴 영양 죽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내 입맛엔 요즘 파는 시판 죽보다 더 맛있었던 것 같다. 아마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면 맛있어지나 보다. 그래서 가끔은 죽이 먹고 싶어 아프고 싶었던 날이 있었다. 난 아파도 참 잘 먹는 사람이었다.
헌데 어느 순간 아플 때 입맛이 없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어른이 된 후, 처음 실연을 당했을 때였던 것 같다. 열도 나지 않고 특별히 아픈 곳도 없었지만 가슴에 무언가 걸린 듯 답답했다. 그때 나는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마음의 병이라는 말을 이해했다. 마음의 병은 아마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사랑으로 아플 수 있다니, 매일 먹고 싶던 엄마의 죽이 아무 맛이 나지 않는 그저 평범한 음식이었다니, 그건 참 몹쓸 경험이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내 마음이 아파진다면, 그때 가장 속상했던 건 아마 내가 아니었을 거다. 정말 열이 나고 아픈 것보다 더 아픈 건 언제 괜찮아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아닐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본 어떤 의사는 아플땐 먹지 않는게 더 좋다고 했다. 아플 때 많이 먹게 되면 아픈 몸을 회복시켜줄 에너지를 음식물을 소화시키는데 다 쓰기 때문에 오히려 더 더디게 낫는다는 거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말을 들어도 우리네 엄마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다. 그건 단지 의학적인 의견일 뿐이라고. 아플 때 배까지 고프다면 더 서러워진다고. 우리네 엄마들은 때로는 민간요법이 더 잘 들을때가 있고, 간절한 기도가 아이를 낫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플 때 엄마들이 억지로 무언가를 먹인다면, 그건 몸이 아니라 마음을 치료하는 과정이다.그러니 그건 잘못된 의학상식이라고 엄마에게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저 자식들이 아프지 않길 바라는 마음인 걸 말이다.사실 엄마들도 아플때 잘 먹어야한다면서 기름진 음식이 아니라 죽을 주시는 걸 보면 음식이 몸을 더디 회복시킨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던 것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이 아플 때,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 것을 보는 것보다 내 몸이 아픈게 더 낫지 않은가. 금슬 좋은 부부 사이에서 남편이 함께 입덧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플 때 누군가 나를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 무언가 해주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의 걱정스런 표정만으로도 힘이 날 수 있다. 그래서 가끔 누군가를 대신해서라도 아프고 싶은 날이 있다.
아무리 좋은 감기약을 먹어도 아무리 잘 듣는 항생제를 쓰더라도 아플만큼 아파야 낫는다. 그저 중요한건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아프지 않게 잘 돌봐주는 일이다. 조금 더디게 낫는다고 해도 그저 잠시 뿐이다. 조금 더 아파도 괜찮을 것 같다. 어쩌면 몸이 아플수록 마음은 더 건강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