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이 행복하기

6화

by 김소연



어렸을 때만해도 나는 지금과는 다르게 장난을 좋아하던 밝은 아이였다. 물론 아직도 조금 짓궂고 자기주장이 강한 편이라서 전히 사람들은 그런 나를 끔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그 상황에 불만 없다. 내가 사람들의 시선을 과도하게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하지 않았을까. 여전히 난 사람들의 그런 시선을 모른 척 할 때가 더 많다. 어쩌면 사람들이 바라는 믿음직스러운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가느니 차라리 가끔은 할수 있는 일도 못 하는 척,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사는 게 더 편하다.


사람들은 간혹 해맑은 누군가에게 철이 없다고 비아냥거리며 조금 어두운 분위기의 자신 같은 사람들이 어른스러운 거라 말한다. 부분의 범한 사람들이라면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해맑고 밝은 이미지를 가진, 자신과는 조금 다른 사람들을 보면 편견에 사로잡힌다. 철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부러운지 정말 싫은지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만약 부러운 마음이 조금은 있다 해도 들에게 그걸 인정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 일거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에게 어른스럽게 행동해야 한다고 배우지 않았던가. 하지만 밝은 사람이 부러울 때가 있다.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감정은 질투나 시기라 부르는데, 질투와 시기는 어떻게 다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소 헷갈리는 이 개념을 이렇게 정리했다. 질투란 초점이 자신에게 시기란 타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가진 걸 왜 나는 가지지 못했을까라고 생각하면 질투, 내가 가지지 못한 걸 왜 상대방은 가지고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시기다. 내 생각에 이 두 개념의 초점은 발전가능성에 있는 것 같다. 어떠한 상황일지라도 그 초점이 나에게 있어야 발전 가능성이 있다.





어느 날 공원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울고 있는 아이를 봤는데 그 옆에는 얌전한 아이가 그 아이를 달래주고 있었다. 두 아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얌전한 아이가 착하다며 칭찬을 해주고 있지만, 어떤 사람의 눈에는 울고 있는 아이가 더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결핍된 감정의 표현을 해야 했던 조금 일찍 자란 아이들 말이다. 어른들이 바라보는 얌전한 아이는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거절에 익숙해진 것뿐이다. 아이가 어른이 된다는 건 수많은 거절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아이는 아이다워야 행복하다면서 아직 거절에 익숙해지지 못한 아이들을 말썽쟁이로 보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진 않은가. 아이의 입장에서는 거절에 익숙해지면, 행복을 포기하면 어른스러워진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는 어른이 되기 위해 행복을 점점 놓게 된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진 않은가. 저 아이가 가지고 있는 걸 나도 사달라고 조르던 아이는 부모의 반복되는 거절에 의해 저 아이는 왜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가지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떼쓰지 않는 아이를 착하다는 말로 포장하며 우리는 누군가에게 착함을 강요한다.


누군가가 원하는 좋은 사람과 내가 원하는 행복한 사람의 경계는 아주 작은 생각의 차이로 결정되는 것 같다. 어른이 된 나는 해맑은 사람이 어른스러운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라는 걸 안다. 누군가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 아닌 그저 내가 행복한 대로 살아보면 어떨까.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어 철없이 살 겁니다.”






keyword
이전 06화조금은 변덕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