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소풍 전날의 설렘을 기억한다. 친구들과의 즐거운 놀이나 추억이라는 거창한 말이 아니더라도 아주 소소한 즐거움이 있던 그 날, 어쩌면 소풍 당일 날보다 설레는 그 전날 밤을 말이다. 여행엔 언제나 짐을 쌀 때가 가장 행복하다. 사랑으로 설레기 좋은 시기는 결혼을 앞둔 때보다 연애시절, 연애시절보다 썸을 탈 때 아니겠는가. 하지만 지나보니 그렇게 설레기만 할 순 없었다. 소풍전날엔 언제나 다음날 비가 올까 걱정이었다.
내 기억으론 소풍날엔 거의 대부분 비가 왔다. 그건 아마 정말 비가 온 날이 더 많아서가 아니라 그 아쉬웠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있기 때문일 거다. 사람은 이성적이기도 하지만 감정적인 동물이라 긍정적이었던 기억보다 부정적인 기억을 더 오래 마음에 품고 산다. 동물의 서열정리는 힘으로 결정되지만 사람의 경우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포함되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니 만약 지금 억울한 일을 생각하고 있다면 조금 내려놓자. 우리가 오래도록 기억하는 일은 어쩌면 사실이 아니라 감정의 기억이므로 그에 연연하는 것은 좋지 않다.
소풍 전날엔 늘 다음날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했지만, 많은 아이들의 바람에도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날이 잦았다. 비가 와서 소풍이 취소된 날엔 영락없이 우리 학교엔 소풍날마다 비가 올 수밖에 없는 전설이 있다며 아이들끼리 떠들어댔는데 그 전설은 이러했다. 우리 학교 옆에 산 아래엔 아주 작은 계곡이 하나 있는데 그 계곡에 사는 소풍을 가고 싶던 용이 소풍가는 아이들이 부러워서 비를 내리게 한다는 미신이었다. 아이들이 그 말을 정말 믿었는지 아닌지, 또 그 대상이 용인지 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소풍날 비가 와서 실망한 친구들에게 이 상황을 책임지고 탓을 할 아무나여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그 전설엔 비밀이 숨겨져 있다. 우리나라는 평야보다 산이 많고, 산 아래엔 어디든 계곡이 있다는 거다. 그러니 그 미신을 만들어 낸 건 우리 학교의 아이들이나 선생님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소풍을 망친 누군가는 대부분의 학교의 상황에나 맞을 만한 분노의 대상을 잘 만들어낸 셈이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이라면 정말 그 전설이 내 학교의 전설이라고 철석같이 믿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런 학교 전설을 믿는 건 아마 영웅 심리와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정말 신비로운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또 이건 우리 학교 학생들만의 비밀이라는 말로 학생들 간에 결속력도 생길 참이다. 비밀이라는 말은 참으로 달콤하지 않은가. 그래, 기상청 예보가 자주 맞지 않던 그 시절, 소풍날 비가 오는 건 다 우리 동네에 살고 있던 용 때문이었다.
내 인생이 화창한 날씨의 소풍날과 같다면 어떨까. 하지만 소풍날엔 비가 자주 내리며, 화창한 날씨 뒤에도 예기치 않은 소나기가 오곤 한다. 지나보면 궂은 날보다 맑은 날이 더 많은 일상이지만,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있는 건 아마 궂은 날이 더 많을 거다. 지난 일에 대해 언제나 아쉬웠던 점이 먼저 떠오르는 건 내가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소풍날 비가 오는 건 내가 운이 없거나, 재수 없는 아이이기 때문이 아니다. 가끔은 내 인생의 소풍날 비가 내린다면 남 탓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내 인생에 찾아오는 불행을 피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이다.
“아무리 애써도 내 인생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남 탓을 조금만 해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