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속도의 비밀

프롤로그

by 김소연



누군가와의 첫 만남에서 상대방이 입은 옷이나 얼굴 표정에서 첫인상이 결정되 듯, 어떤 책을 읽을 때 가장 강렬한 인상을 새기는 건 바로 첫 문장이다. 그래서 첫 문장을 오랜 시간 고민하는 건 어느 작가나 마찬가지일 거다. 나도 그걸 오랜 시간 고민했으나, 문득 드는 생각은 이러했다. 만약 책의 전체적인 내용보다 훨씬 좋은 첫 문장이라면, 그건 독자를 기만하는 것 아닐까 하는. 하지만 그래도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그건 정의를 따르느냐 아니냐의 거창한 문제는 아니지만 자꾸만 거창한 생각으로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고작 책 한권일뿐인데도 그런 고민 잠 못 드는 불면의 밤을 보내는데, 내 인생의 첫 문장이라면 어떨까.


인생의 중반을 지나 보니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처음 내딛는 발걸음이 가장 요했다.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이 정해져 있다 해도 마찬가지였다. 여러 날 동안 심사숙고해서 결정된 방향일지라도,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 찰나의 선택에 의해 어쩌면 그 길의 여정이 꽃길인지 구불구불 굴곡진 길인지 느 정도 정해지지 않았던가. 그러니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은 아주 신중해야 하는 일이었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작가님은 글을 쓰기 전, 글의 서문인 '작가의 말'을 먼저 써둬야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방향성을 잃지 않을 거라 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글들의 서문도 먼저 써 두었으나,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이 글의 서문을 벌써 다섯 번째 고쳐 쓰는 중이다. 그러니, 내 길은 조금 굴곡진 길이었다. 국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길도 있다 걸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내가 처음 생각해 두었던 그 방향과는 조금 틀어진 글들. 옛 속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에 십분 공감하며 말은 서문이지만 마지막에 완성되는 부끄러움을 견뎌낼 것이다. 책 한 권 분량의 원고에 비하면 고작 부끄러움이 대수겠는가.


결국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었던 길일지라도 결코 뒤돌아서 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여태 내 삶의 뒤를 자주 돌아보지 못했다. 앞만 보고 빠르게 가는 것, 그게 내 계획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인생은 계획대로만 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꼭 내가 결정한 그 길을 고집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나온 그 길이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만큼의 안정된 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냥 우연히 가다 보니 그 길이 결국 내 길인가 싶을 만한 상황이 자주 펼쳐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계획에 없는 일들이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어느 때에는 다른 곳을 보고 또 어느 때에는 뒤를 돌아보기도 하고, 그런 게 바로 인생을 사는 즐거움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인생 모두가 한 편의 소설이 된다.





살다 보면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순간이 있다. 나는 열심히 가고 있지만 속도가 나지 않고, 누군가는 노력 없이도 쌩쌩 잘 달리는 것처럼 보일 때면, 괜스레 내가 가진 차를 탓하고 싶어 진다. 내가 타고 있는 똥차로는 앞서 가는 슈퍼카나 자율주행이 가능한 최신식 차를 따라잡지 못할 거라는 자괴감이 드는 거다. 지만 차의 종류와 가속도라는 것은 서로 연관성이 없다. 차는 내리막 길로 접어들어야 가속도가 붙는다.


인생의 길은 참 고되고 길다. 매일 반복해서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고, 그걸 하다 보면 내 삶이 더 나아지고 있는지 더 별 볼일 없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내 인생의 길이 롤러코스터처럼 다이내믹하게 펼쳐진 길이 아니라면, 당장은 내가 가는 길이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쉽게 눈치챌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결국 힘든 여정 끝에서야 내가 지나온 길이 어떤 길이었는지 알 수 있으니 지칠 수 있다. 때론 아주 멀리서 오르막 길을 오르는 나를 본다면 좌절감이 들지 않을 테지만, 어디서 봐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러니 결국 이 인생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나를 응원하는 일이 전부다.


지금도 한걸음 한걸음 오르막을 힘겹게 오르고 있을 누군가의 인생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치 꿈속에서처럼 무겁고 지친 발걸음을 한 발씩 떼면서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겠지만, 지금 힘든 의 인생은 아직 오르막이 보다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누군가는 이미 가속도가 붙은 내리막 길을 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지금 힘든 내 인생은 아직 오르막 길이여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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