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호기심이 많다. 그들은 늘 가지 말아야할 곳을 가지 말아야할 시간에 가곤 한다. 그들은 참 용감하지만, 그렇게 용감하다고 모두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용감한 사람들의 결말은 영화 초반에 죽거나 끝까지 살아남거나 두가지 중 하나지만, 먼저 죽는다고 서운해할 필요는 없다. 용감한 그들 중 끝까지 살아남는 사람이 주인공이 될때, 먼저 죽은 이는 그 주인공의 의인이 되니 어느 쪽이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그들을 보며 뒷짐 지고 있던 사람들의 결말은 늘 뻔하지 않은가. 영화 중간에 죽는 것뿐, 어떠한 일이 있어도 그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다.
옛 말에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고 했는데, 이 말을 역으로 생각해보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 밖에 할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영화의 제작자들이 애써 더 두려운 상황에 무지하리만큼 용감한 주인공을 만들어내는 건 중간만 가는 자들에게는 주인공이라는 타이틀을 내주기 싫다는 의미이기도 한거다. 중간이나 할 것인지 중간 밖에 못할 것인지는 각자가 정할 몫이다.
조금 모자라고 어눌한 주인공일수록 그 재난 상황은 더 빛이 발한다. 만약 그들이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다면 그건 정통 멜로가 아니라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밖에 없을 거다. 하지만, 재난 영화에서만큼은 그런 사람들을 더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오히려 그런 짠한 주인공 덕분에 더 감동적이며, 저런 사람도 잘 해내는데 나도 못할 것 없다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샘솟는다.
삶이 한편의 재난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예상하지 못한 시련이 계속해서 찾아오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우리는 언젠가 한번쯤은 삶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부족하고 착한 사람일수록 더 험난한 재난 상황을 만들어내지만 뒷짐지고 구경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 무언가를 오래 생각만 하는 대신 실천하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재난영화에선 생각이 많고 똑똑한 사람은 악역이 되고 그들은 늘 조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재난영화의 매력이다. 재난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타인을 이용하려는 사람은 늘 조연일 수밖에 없는, 권선징악이 명확한 내용 말이다.그래서 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 재난 영화를 본다. 내 삶도 내가 꿈꾸는 만큼 내 뜻대로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세상은 늘 실천하는 사람 편이다. 로또에 당첨되려면 로또를 사야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될 수 없다.
내 인생의 모토는 ‘중간만 가자’였다. 누구에게도 칭찬 받지 않지만 비난 받지도 않을 그렇고 그런 삶 말이다. 가끔은 누군가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어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시도도 했을 거다. 그러다보면 누군가 열심히 살다가 일부는 성공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를 할 때, 나는 가만히 있다가도 중간은 갈 수 있으니 실패한 어떤 이보다 더 나은 거 아닌가라는,도전하지 않아서 더 결과가 좋았다는 자기합리화를 하게된다. 헌데 그렇게 살다보면 나는 내 인생에서조차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도전하지 않는 자는 실패를 할 수가 없으니 실패를 했다면 열심히 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랑스럽게 생각해보자. 자신의 삶에서한 번도 좌절하지 않았다면 한 번도 도전하지 않은 것과 같으니그 동안 열심히 노력한 증거라고.
간혹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겠지만 내가 인정하기 전까지는 실패한 게 아니다. 실패를 인정하는 건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때 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