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잘 웃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잘 웃지 못한다고 해야한다. 그건 아주 오래전에 생긴 습관이다. 난 기면증 환자이고, 기면증의 한 증상인 탈력발작이라는 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증상은 환자마다 조금 다르지만, 특정한 흥분상태에서 나타나는 발작으로 대개 1~2초, 길게는 5초 정도 이어진다. 기면증 환자의 대부분이 주로 웃을 때, 행복할 때 신경이 마비되고, 가끔은 웃긴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기면증 환자가 발작을 하거나 갑자기 잠에 든다고 해서 그들이 정신을 잃는 건 아니다. 다만 몸이 움직이지 않을 뿐이다. 기면증이라는 말을 한자로 풀어보면 정신은 잠들지 못한 채 몸만 잠드는 기이한 수면 패턴을 가지고 있는 병이다. 그러니 발작을 하는 기면증 환자 옆에서 그들을 조롱하거나 뒷담화를 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면증 환자는 다 듣고 있다.
기면증 환우협회의 게시판 글에 의하면, 모 학원에서 학생이 기면증이 있다는 점을 알렸는데도 수업시간에 잔다며 학원선생이 그 학생 앞에서 다른 학생들과 흉을 봤다는 글이 있다. 그 학생이 얼마나 수치스러웠을지, 내가 학창시절에 겪었던 일이 생각나 씁쓸했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일을 나쁘거나 좋거나 둘 중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나쁜 일이 명백한 상황이라도 말이다. 그래서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면 기면증이란, 그토록 원하는 깊은 잠에 들지 못하며 즐겁고 행복할때 잠들지만 그렇게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병일 거라고. 그것은 마치 희망과 좌절이 공존하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지금 느끼는 행복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신의 선물이자 저주 같은 거라고 말이다.
출처 네이버_ 영화클래식,라디오스타
영화 클래식에서 이기우 배우가 이 증상을 적절하게 잘 표현했다. 그는 주로 달리는 중에 발작해서 자주 쓰러졌는데 그러고 보면 기면증이라는 병은 참 멋없는 병이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나 내 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내 지인이 웃으며 쓰러지는 나를 본다면, 마치 개그맨들이 꽁트를 하는 것처럼 우스워 보이지 않을까. 차라리 큰 충격으로 뒷목을 잡고 쓰러지는 영화의 한 장면이 더 자연스럽다. 평범한 외모의 내가 웃으며 쓰러지는 꼴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늘 재미있는 걸 좋아하고 장난이 심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우울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웃음과 행복은 나에게 사치다. 그것은 내 치부를 드러내는 몹쓸 감정이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우울증의 시발점이었을 거다.
웃으며 쓰러지는 바보 같은 상황이 자주 발생할 때쯤 나는 웃지 않는 연습을 했다. 나는 아무리 웃긴 상황이 와도 웃지 않을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런 무표정은 외면 뿐 아니라 내면까지 변하게 만들었고 나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느 상황에서나 무표정이며 무감각했던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 전부에게 내 상황을 설명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 말을 해도 믿지 않는 사람과 금세 잊어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쓰지만 의외로 타인에게 관심은 없다. 그러니 타인을 신경 쓰느라 쏟는 에너지로 다른 일을 하는게 더 낫다.
헌데 어느 순간, 그런 증상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사실 기면증은 나이가 들며 증상이 완화되는 병이다. 웃어도 발작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서 이제는 무표정하기 위한 연습이 아니라 웃는 연습을 한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잘 웃으려 애쓴다. 한동안 웃음을 잃었던 이유로 내 웃음은 아직 어색하지만, 사춘기 때부터 잘 웃지 않았으니 내 얼굴엔 자주 웃어 생기는 주름따위는 없다. 그러니 주름 걱정으로 웃지 못하는 중년 여성들보다 더 활짝 웃을 수 있다. 난 중년이 되어서야 해맑게 잘 웃는 사람이 되었다. 삶에 찌들어 보일수 있는 중년에 주름 걱정 없이 이렇게 웃을 수 있으니 오히려 좋은 것 아닌가.
예전에 필라테스를 하던 중에 유연하지 못해서 할수 있는 동작보다 그렇지 않은 동작이 많던 내게 담당 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몸이 뻣뻣한 건 젊다는 증거라고. 근육에 힘이 부족해지는 노년이 되면 저절로 유연해진다고 말이다. 그 강사는 가장 유연하지 못한 나에게 지금 모인 사람들 중에 내가 가장 젊은 몸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지만, 많이 위로가 됐다. 사실 그건 적응을 하지 못하는 수강생에 대한 배려였을 거다. 하지만 그녀의 말한마디 덕분에 더이상 나는 그 곳에서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이가 들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로 인해 시간이 지날수록 내 삶은 점점 더 유연해질 거라는, 그러니 뻣뻣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아직 젊어서 그런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