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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주인공은 나야 나

by 김소연 Aug 07. 2023



법륜스님법륜스님



주위 사람들한테 너무 잘해주지 마세요. _ 법륜스님 <즉문즉설>


제목 _ 워너원 <나야 나> '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인용




작은 이모는 외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아버지가 오늘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어제 아버지한테 막걸리 한 병을 다 드릴걸 그랬다며 오열했다. 이모는 그 이후로 한참을 울먹였다. 어린 나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맨날 할아버지를 향해 눈을 치켜뜨더니 왜 장례식장에서 고작 막걸리 타령인가. 하지만 엄마와 큰 이모가 그 타이밍에 함께 오열한 걸 보면 아마 할아버지에겐 막걸리가 아주 중요했던 것 같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이다. 할아버지는 전 중에 머리에 총을 맞아 장애인이 되다고 했다. 다행히 총알이 빗겨 나서 한쪽 눈을 잃었지만 잘 회복되었고 그 이후 나라에서 준 일자리에서 평생 누군가의 허드렛일을 하셨다. 그때 빗겨간 총이 뇌의 일부분을 지나면서 할아버지의 지능은 조금 낮아지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적이었다. 내가 본 할아버지는  초점을 잃은 눈빛이거나 술에 취한 모습이었지만, 주로 온화하신 모습이었다. 하지만 어린시절에는 할아버지의 한쪽 눈의 의안이 꽤나 무서웠다.


작은 이모는 엄마의 다섯 남매 중에 할아버지와 가장 분란이 많아 보였는데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남매들 중에 가장 오래 작은 이모와 함께 살았기 때문일 거다.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에도 뇌를 조금 다친 데다가 그 이후 알코올중독이 되었으니 당연한 수순으로 돌아가실 때에는 치매에 걸렸다. 할아버지 치매에 걸린 이후에 이모때문에 유일한 낙이었던 걸리를 맘껏 시지 못했다. 치매에 걸렸으니 당연히 술은 시지 않아야겠지만, 그래도 이모는 종일 막걸리를 기다리는 할아버지가 안쓰러워 하루에 반 병씩 같은 시간에 드렸다고 했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는 그 시간을 기다리는 유일한 낙이었다. 돌아가시기 전날엔 잠시 할아버지의 정신이 멀쩡히 돌아오기도 했다는데 할아버지는 막걸리를 줘서 고맙다며 조금만 더 마시고 싶다고 했지만 이모는 거절했다. 그 할아버지와의 마지막 대화였다. 그날 할아버지에게 막걸리를 금 더 드리지 못한 게 그 이후로도 오랜 시간 이모에겐 큰 한이 되었



<즉문즉설>에서 법륜스님은 이런 말을 했다. 평상시에 너무 잘해주던 남편이 죽으면 남겨진 아내는 "우리 남편 없이 이제 나 어떻게 사냐"고 한탄하며 온통 자기 걱정, 먼저 떠난 편에 대한 원망뿐이고, 평상시에 맨날 속만 썩이고 술만 먹던 남편이 죽으면 남겨진 아내는 "아이고 오늘 죽을 줄 알았으면 어제 술 한병 줄걸"이라고 오히려 잘해주지 못한 걸 후회하더라고 말이다. 이승을 떠나는 망자도 같은 마음 아닐까. 자신이 정성껏 돌보던 가족들을 두고 가는 마음이 힘겨울 거라고.


내가 지켜야 할 어떤 가치를 지키며 사는 것은 훗날 돌이켜보면 후회를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야 알수 있는 일도 많다. 세상이 정한 가치를 지키며 사는 것도 좋지만, 그렇게 무언가를 지켜내며 아등바등 살아도 모든 일이 다 잘 되는 건 아니니 가끔은 마음이 가는대로 이기적으로 사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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