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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159cm 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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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Mar 09. 2024

고작 1cm인데





 평범하지만 독특하고, 솔직하지만 감추고 싶은, 159cm.








 우리나라 여성평균 키는 159cm라고 합니다. 하지만 공공연한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어느 누구에게 물어도 159cm라 말하는 여성은 별로 없다는 겁니다. 저 말고는요. 대신 우리나라에는 160cm가 아주 많습니다. 159cm와 160cm는 어감이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고작 1cm 차이일 뿐인데도요.



 어느 날인가. 저보다 한 오 센티 정도 작은  친구는 자신의 남자친구에게 자신의 키가 160cm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녀의 남자친구는 제게 키를 묻더군요. 저는 159cm라고 했습니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1cm 차이가 엄청나구나. 네가 훨씬 더 작아 보이는데?"라며 의아한 눈으로 저를 보더군요. 정말 의아한 건 저였지만, 금세 눈치를 챘습니다. 제 친구는 늘 하이힐을 신고 다녔고, 그는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학창 시절 그녀는 키 순서대로 번호를 긴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까치발을 들고 제 뒤에 서있었습니다. 그때도 담임선생님은 눈치채지 못했죠. 가 살아온 세상은 그랬습니다. 그때 저는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부끄러움의 주체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요. 때로는 자신을 포장하는 능력도 아주 중요하다고 누가 그러더라고요.



 그때부터 저는 친구가 신는 하이힐을 사들였습니다. 친구가 신는 것보다 더 높은 굽의 신발도 샀습니다. 그때부터 제 는 159cm가 아니라 161cm나 162cm가 되었습니다.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 같은 건 없었습니다. 친구에 비하면 아주 양호한 편이었죠. 발에서 피가 나고, 굳은살이 배겨도, 다리가 퉁퉁 부어도 좋았습니다. 늘씬한 키를 가질 수 있다면요. 그러던 저는 점점 지쳐갔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그녀는 매주 주말 우리 집을 찾아와 저를 산으로 데려갔는데요. 그녀는 산을 오르면서도 하이힐을 신었고, 저는 좌절했습니다. 결국 저는 그녀에게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녀가 하이힐을 신고 저를 산에 데려간 건 그녀의 치밀한 계획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깔창도 없는 단화를 신고 다닙니다. 그때부터 제 키는 161cm도 162cm도 아닌 159cm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지극히 평범한 제 키를 의심하곤 합니다. 159cm의 키는 평균이지만, 작은 편에 속합니다. 세상의 가치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왜냐하면, 저보다 작은 그 친구는 여전히 지금도 160cm일 테니까요. 그녀는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뭐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인정해줘야 합니다.



 단화를 신은지 거의 이십 년이 되었지만, 제 발엔 여전히 하이힐을 신었던 훈장이 남아있습니다. 한번 배긴 굳은살은 없어질 기미가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쯤 그녀도 발에 배긴 굳은살을 보며 그동안 속인 키를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쯤 그녀의 키는 154cm가 되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160cm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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