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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159cm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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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연 Mar 02. 2024

나와의 약속을 자주 어겨도




하찮은 나와의 약속




 이번 주말엔 혼자 영화를 봐야지. 쇼핑도 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도 한잔 셔야겠다. 집으로 돌아선 거품 목욕을 하고, 시간이 되면 저번주에 사둔 책도 읽어야겠다. 금요일이 되면 나와의 약속을 다. 재미있는 영화가 나왔는지 검색해보고, 영화관 근처의 한가한 카페도 알아둔다. 주말 동안 읽을 책을 책장에서 꺼내 책상 위에 고이 올려 두고 거품 목욕제가 있는지 확인한다. 준비는 완벽하다.




 주중에는 무계획의 일상을 정신없이 흘려보내고 주말만큼은 알차게 보내고 싶다. 그건 열심히 살아온 나를 위한 선물 같은 거다. 하지만 계획이 알찰수록 나는 지쳐갔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 돌이켜보면 나는 영화도 책도 보지 못했으며, 빈 맥주캔만 집안을 어지럽히고 있다. 내게 계획이란 무계획이 가장 계획적이다.




 세상에서 가장 쉽게 약속을 어길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자신과의 약속을 잘 지켜낼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부지런한 사람이거나 나르시시스트뿐일 거다. 나르시시스트라고  하면 대부분 부정적인 사람들로 인식하지만, 관계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나르시시스트야 말로 최고의 사람다. 그들은 자신의 약속을 하찮게 여기지 않을 테니. 나는 나르시시스트는커녕 남의 눈치만 살피는 사람이라서 아마 자기 자신이 최고의 친구가 되는 경험은 하지 못할 거다. 그러고 보면 유일하게 자신과의 약속을 쉽게 어길 수 있는 것도 마치 보상심리 같은 다. 나도 사실은 남 눈치 보지 않고 내 맘대로 살고 싶다는 뭐. 그런.




 자꾸만 엇나간다. 친구들이 핑크색을 좋아하면 나는 늘 남색을 들이밀었지만 내 눈은 핑크색을 보고 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가치를 부정할수록 나는 점점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졌다. 그래서. 그 전주 주말에 보러 가기로 한 영화가 흥행 실패로 조기종영을 한다면 아쉽기보다는 오히려 잘됐다고 안심하는 식으로. 스스로가 원하는 것이 무언지도 모른 채.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면, 내가 안타까워하는 어떤 일을 보며 오히려 다행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 내어 꼭 안아줘야겠다. 그가 마치 나인 것처럼. 괜찮다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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