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N

인간답게 말고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

by 김소연


37살의 나를 생각하면 늘 병원이었거나, 방 침대 위였다. 늘 머리가 아팠고, 어지러워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육체의 아픔이 정신을 지배하기 시작할 즈음, 그들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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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저승사자를 본건 17살 때였는데, 사실 저승사자인지 내 마음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환영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을 다시 본건 37살이었다. 머리가 많이 아팠고, 병원에서는 편두통이라며 보는 것 만으로도 질릴 만큼 많은 양의 편두통약을 주었지만, 아무리 먹어도 낫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난 기면증 진단과 17살에 크게 넘어져 다친 내 왼쪽다리에 신경병증이라는 병을 진단 받았었다. 기면증이라는 병은 나라에서 인정하는 희귀난치병이다. 그 병을 진단 받음으로 인해 난 ‘산정특례자’가 되었고, 나라에서 그간의 내 아픔을 인정해 주는 듯 했다. 그 이후 내 인생에 더 이상의 병은 없을 거라고 안심했었지만, 난 여러 가지 증상을 복합적으로 가진 사람이었다. 그때 나의 별명은 ‘종합병원’ 이었다.





머리가 많이 아프던 그 37살의 날들에 나는 세 번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나의 운전 미숙일거라고 단정 지어 말했다. 한 해에 세 번의 교통사고가 난걸 보면 분명, 운전미숙이 아닐 수가 없다고 했지만, 그 세 건의 사고 모두 상대 운전자의 100%과실 사고였고 그 세 명의 운전자 중, 과실 비율에 불만을 가진 운전자는 없었다. 그리고, 난 여전히 21년차 무사고 운전자다.


세 번째 교통사고가 났을 때, 나는 많이 야위어있었는데, 상대 운전자분은 차에서 내리는 나를 보며,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사고를 낸, 80대 할아버지인 자신보다 더 몹쓸 몰골을 하고 차에서 내리는 젊은 여자의 모습이 참으로 안되어 보였나보다. 그는 친절히 119에 전화를 하고, 많이 파손된 차량을 공업사에 인도해주겠다며, 나를 먼저 병원으로 보내주었다.





병원에 입원 후, 한 달 동안이나 머리가 아프다는 나를 보며, 의사는 교통사고 후유증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는데, 보통 외상이 없는 교통사고의 후유증인 뇌진탕은 2주면 낫는단다. 졸지에 꾀병환자가 되는 듯 했지만, 병원에서도 계속 아프다는 환자를 퇴원시킬 수도 없었다. 그 병원에 입원한 한 달 동안, 나는 멀쩡하던 이가 다 흔들리며, 이를 두 개나 발치했다. 그러던 중, 어지러움을 호소하며 쓰러졌고, 한쪽 눈이 흐릿하고 검게 보이며 정신을 잃었다. 결국 난 입원 중이었던 병원에서 근처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 대학병원에서 검사 후, 난 뇌졸중 진단을 받았는데, 그때 나와 내 가족들은 마지막으로 사고를 낸 상대 운전자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아직 어린 나이었던 아이들과 늘 바빴던 남편 대신 나를 살게 해준 은인 같았다. 병원에서 쓰러지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는지, 그 이후에도 난 한참동안이나 그 생각을 했었다.


7이라는 숫자는 내게 두려운 숫자다. 나는 27살에 결혼을 했고, 7살엔 그랬다.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똘똘한 큰 딸을 보며, 어리고 어눌했던 나를 일찍 학교에 입학시켰는데, 그게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내 인생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니는 7이라는 숫자는 사실 ‘행운’의 숫자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숫자가 아닌가. 하지만, 아직까지 내겐 행운의 숫자가 될 수 없다.


나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그들이 느끼는 것과는 다른 것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좋아하던 4라는 숫자가 누군가에게는 안 좋은 느낌을 주듯,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미신이나 어떤 의미에 나를 맞출 필요는 없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생명의 은인이 되는 마법을 느낀 자에겐 어떤 미신도 큰 의미는 없을 것이다. 다만, 곧 다가올 47살에는 조금 다른 삶이 펼쳐지길 바란다. 이제는 7이라는 숫자를 인생에서 버릴 때도 된 것 같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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