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아지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배꼽 밑에 고여 있던 식욕이 소장과 위를 타고 슬금슬금 올라온다. 냉큼 집으로 가서 라면에 반 건조 오징어와 파를 가위로 잘라 넣은 후 얼큰한 향이 올라오도록 후추와 고춧가루를 넣고 휘휘 젓는다. 마지막으로 계란이 풀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탁 깨서 넣으면 완성이다. 볶음김치를 꺼내고 적당히 푼 밥을 뜨끈한 국물에 말아먹으면 기가 막히다. 얼추 배는 부르지만 짭짤하게 먹었으니 달달하게 즐길 차례다. 차가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꺼내 와 커다란 숟가락으로 퍼 먹는다. 한참 먹다 보면 어느새 과자 봉지를 뜯고 있다. 다이어트는 또 저~만큼 멀어져 간다.
내가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게 곧 나라면, 종일 먹는 생각만 하는 나는 어쩐지 한심하게 느껴진다.
결혼 후 남편의 직장 옆에 신혼집을 얻고, 나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새색시답게 대형마트에 가서 잔뜩 장을 봐 왔다. 팔이 떨어질 것처럼 아파도 ‘뭐, 다 이렇게 사는 거지.’ 박스를 머리에 얹고 흥얼거리며 걸었다. 상큼한 하늘색 앞치마를 두른 채 신나는 노동요와 함께 몇 시간씩 주방에 서서 정성스레 만들어 먹었다. 남편의 야근이 잦아지면서 나를 위한 요리가 귀찮아졌다. 대충 끼니를 때우다가 남편이 퇴근하면 반기면서 치킨을 시켰다.
대학교 때, “네가 임춘애냐?”라는 농담을 자주 들었다. 임춘애는 라면만 먹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알려진 선수다. 도서관에서 항상 컵라면을 먹었다. 어느 날, 큰맘 먹고 시장에서 치킨 반 마리를 샀다. 겅중겅중 신나게 뛰어 집에 도착했는데, 기척을 들은 주인 할머니가 안채로 건너오라고 하셨다. 계량기가 하나니 수도세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팔순에 가까운 욕심 많은 할머니는 몇 번이고 계산을 반복했다. 방에 돌아가 가방에서 꺼낸 치킨은 차갑게 식어 닭 누린내를 풍기고 있었다. 씹을 때마다 이에 찌걱찌걱 엉겨 붙는 기름 맛에 비위가 상했다. 마지막 조각까지 억지로 밀어 넣는데 왈칵 눈물이 났다.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고 떠미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때 못 먹고 미뤄둔 것을 지금에야 먹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글을 쓰는 것은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일이었다. 미칠 것 같은 사랑과 빛나는 꿈을 좇던 나는 온데간데없고, 음식이 유일한 낙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과 함께 인생의 빛이 탁, 꺼지고 희망은 연기처럼 사라진 듯했다. 계속 걷게 하던 불빛이 없으니 길을 잃고 헤맸다. 이번 생애 처음으로 주어진 자유에도 상쇄되지 않는 헛헛함을 음식으로 채우며 기억할 것 없는 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갔다.
일본에서는 80년대 경제 위기 이후 ‘피터팬 증후군’이 확산되었는데, 이 콤플렉스는 어른이면서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고 항상 불안해하며, 현실에서 도망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드는 특성을 보인다고 한다. 마흔이 넘어 강사를 해보겠다고 찾아간 학원의 원장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꼭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팬 같아요."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나 빼고 전부 이십 대였다.
글쓰기 모임 첫날, 꽃에 비유해 자기소개를 하라고 해서 ‘피었다가 금세 떨어지는 벚꽃이, 늘 작심삼일인 나와 비슷한 것 같다.’ 고 말했다. 한 분이 이런 코멘트를 주셨다.
“벚꽃은 빨리 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열정적으로 화려하게 피어나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벚꽃 구경을 가기도 하지요. 아름다운 벚꽃처럼 부정의 한편에는 긍정이 있는 것 같아요.”
흐드러지게 핀 벚꽃처럼 한 때 열정과 최선을 펼치며 살았다. 숱한 노력들은 비바람에 힘없이 꺾여 나뒹굴었지만, 할퀴고 간 자리에도 찬란한 기억은 남았다. 그분 말대로 모든 일엔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존재했다. 금세 질지라도 그 화사한 자태를 잊지 않은 사람들은 봄이 되면 다시 벚꽃을 찾는다. 비록 지금은 초라해도 생의 열정을 잃지 않는다면 다시금 꽃다발 같은 시간이 오리라 믿는다.
이제는 애써 나를 괴롭히지 않더라도 평범한 노력을 계속하면 상황이 나아지리라는 걸 안다. 참 고생 많았던 그때의 나를 토닥이며 지금의 나를 돌봐야겠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 내릴 수 있는 새로운 낙을 찾아봐야겠다. 나는 여전히 작심삼일이지만 매일 다시 시작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