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간담회 기간이 시작되면 교무실의 선생님들은 둘로 나뉜다. 선물을 많이 받는 선생님과 선물을 조금 받는 선생님. 한 텀의 간담회 시간이 끝나고 나면, 어떤 선생님은 손에 들기도 힘들 만큼 많은 선물을 받아서 들어오고 어떤 선생님은 간담회 나갔던 그대로 학생의 기록부만을 들고 들어오거나 간단한 선물과 함께 들어온다. 초기 신입 시절에는 선물을 많이 받는 선생님들이 아무래도 인기가 있는 것일 테니 인기는 곧, 티칭 실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러 번의 간담회 통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 경험이 많아지고 관계도 확장되며 여러 공동체에서 사람들을 만나보니, 자기에게 잘 대해 주는 사람에게 그 보답으로 꼭 잘 대해 주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잘 대해 주는 사람들이 본인이 참고 배려했다는 이유로 무시받거나 그 친절이 당연한 거라고 취급받기도 했다. 정말로 씁쓸한 현실이다.
학생들에게 친절하고 부모의 입장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며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보통 선물이 많지 않았다. 도도해 보이고 학부모들을 쥐락펴락하는 그런 선생님들에게 선물은 많이 돌아갔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은 사회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프로임을 강조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떻게 해야 프로인지를 많이 생각해본다. 사실 학원 선생님들은 대부분 실력이 있다. 학교 선생님들에게는 정말로 죄송한 말이지만, 내가 십여 년 동안 바라본 사교육의 선생님들은 실적이 곧 수입이기 때문에, 특히 고등부 선생님들은 수준이 상당하다. 열정도 학교 선생님들에 비해서 높은 편이다. 그렇기에 실력과 열정은 프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여기에 '마음'(혹은 인성이라고 해야 할까)을 추가한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쓰는 것이다. 단기적으로 밀어붙여서 아이의 실력이 향상되면, 시험 점수는 더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실력과 더불어 영어를 즐기며 하나의 언어로 또 자기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것까지 이어지기는 힘들 것이다.
장기적으로 아이가 영어를 생활화하며 삶의 끝까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지도하려 애쓰는 마음. 내가 생각하는 프로의 조건이다. 그래서 나는 프로라고 당당히 말한다.
아이들을 계속 데리고 있거나(학원을 계속 다니는 것을 말한다) 학생 수를 늘릴 수 있는 방법 중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두 가지는 실력과 개그 코드라고 할 수 있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 아니면 재미있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몰리게 되어 있다. 초등과 중등은 또 조금씩 다르다. 초등학생들은 부모의 선택에 따라서 교육이 진행되기 때문에, 친절하고 꼼꼼한 선생님을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편이다. 초등학생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의견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역에 따라서도 차이가 크다.
들어오는 선물 또한 지역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이곳에서는 쿠키류가 평범한 선물에 속했다. 강북 쪽의 캠퍼스에 있을 때는 호두과자나 베이커리류가 자주 들어왔는데 그건 캠퍼스 근처에 호두과자 가게와 제과점이 있어서였다.
간담회 기간이 되면 한국인 선생님들은 힘들어서 삐쩍 말라가고, 원어민 선생님들의 얼굴은 시종 싱글벙글 웃고 있다. 매일매일 한국인 선생님들이 받아오는 선물로 간식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 보통 간식거리를 선물로 받으면 교무실, 상담실, 그리고 관리부 선생님들과 다 같이 나누어 먹는다. 한쪽에 간식 놓을 곳을 만들고 거기에다가 받은 선물을 올려놓으면 지나다니면서 직원들이 먹는다. 고백건대 종종 새로운 간식이 들어오거나 특이한 간식을 선물 받으면 신이 나기도 했다. 이런 즐거움도 '김영란법' 이후에 상당히 줄기는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교육은 '김영란법'의 둘레에서 꽤 벗어나 있는 구역 중의 하나이다.
나의 첫 간담회에서 첫 번째로 만난 학부모는 중상위 레벨에서도 상당히 잘하는 학생의 어머니였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이 학생은 캠퍼스가 오픈할 때부터 형과 함께 초등관에 다녔고, 형은 아직도 중등관에서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상당히 카리스마가 있고 자녀들의 학업에 관심이 많다고도 들었다. 학생은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사실 이 학생은 수업 첫날부터 눈에 띄었다. 일단 입은 옷에서 센스가 느껴졌다. 많이 튀지는 않았지만 개성이 넘치는 코디였다. 눈에 띌 정도로 그렇게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키도 또래 아이들에 비하면 큰 편이고 서글서글하게 눈웃음을 치면서 친절하게 행동하고도 똑 부러지게 말을 할 줄 아는 아이였다. 그런 아이의 어머니가 처음이라고 생각하니 사실 긴장이 되었다. 원어민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모두가 다 이 아이를 좋아했다. 성격도 좋고 영어도 잘하니까 대화가 잘 통해서 즐겁다고 했다. 지난 학기와 지금의 성적도 분석해 보고, 이전에 이뤄진 상담 기록도 확인해 보았더니 크게 문제점도 없고 평범하게 잘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이 간담회에는 선생님들에게 미션이 있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그 미션은, 여름 방학 맞이 특강을 설명하고, 아이에게 부족한 부분에 맞추어서 특강을 등록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만, 선생님들에게는 학생의 특강 등록이 일종의 실적이었다.
방학 특강 기간에는 여러 가지 단과 수업이 생성된다. 중등 내신 대비 문법, 리딩, 라이팅, 리스닝 수업이라든지, 어학 인증 시험 대비 수업이라든지,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디베이트 수업이라든지,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지만 재미있게 스피킹을 할 수 있는 디스커션 수업이라든지... 학생들에게 필요한 수업을 선생님들이 회의하고 기획안을 제출해서 수업이 만들어진다. 본사에서 기본적으로 내려오는 수업들도 있다. 학생들은 누구나 다 구멍을 가지고 있다. 아니,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구멍이 있다. 그 구멍을 공략하면 된다. 그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고 차차 그 부분을 공략하는 화법에도 익숙해져 갔다. 하지만 내 마음속으로 진심을 다해 특강을 권유한 아이들이 있었던 반면, 몇몇은 10%가 모자란 마음으로 특강을 설명했다. 왜냐하면 초등학생들은 공부도 중요하지만, 많이 뛰어놀아야 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보다는 영어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서 상담을 진행했다.
간담회로 다시 돌아오자면, 그 학생의 어머니는 이미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다 정하고 오셨다. 그저 분당 캠퍼스에서 온 새로운 선생님인 내가 궁금해서 인사차 오셨던 거다. 학생에 관한 영어에 관한 이런저런 보통의 이야기를 나누었고, 내가 여름 특강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어머니께서 먼저 특강은 이런 것을 듣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우와- 나의 첫 번째 실적이 생겼다. 내가 들인 공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바로 그날, 그 자리에서, 여름 특강을 두 과목이나 신청하고 가셨다. 앞으로 남은 일주일간의 모든 상담이 이렇게 순조로우면 좋을 텐데, 늘 어려움은 있는 법이다. 그래도 나름 그 일주일을 잘 보냈고, 처음이기에 기억에 많이 남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색하고 어리숙한 면도 많은 선생님이었는데 부모님들이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셨기에 감사할 따름이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은 여전히 긴장의 연속이다. 학부모 간담회가 이 캠퍼스에서의 첫 도전이었고, 여름 특강 등록이 또 다른 도전이었다. 흘러가는 대로 따라만 가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중심을 잡고 내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선생님으로 한 발씩 나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조금씩 깨닫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상담과 특강 등록이 고비라고 생각했지만, 실질적인 고비는 특강이 시작되고 나서 찾아왔다. 방학 특강 기간이 더 타이트하고 훨씬 더 살이 쪽쪽 빠지는 그런 기간임을, 특강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신입 선생님인 나는 그 상황을 도무지 예측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