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예의를 지키세요.

by 안나 May 08. 2021


“병원에 꼭 가보세요.”

살며시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었다. 10여 년 전쯤의 일이다. 요즘엔 “어떻게 체중관리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에겐 둘 다 같은 말로 들린다. 40대의 조금 통통했던 모습을 기억하거나 못하거나의 차이일 뿐이다.      


병원에 꼭 가보라는 사람들에겐 걱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지만 체중관리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겐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다이어트에 대한 질문이기에 나에게는 tv 광고처럼 설득력 있게 설명할 필요 없는 심플한 정답이 있기 때문이다. “아프면 돼요. 특히 위장병이면 확실하게 관리가 돼요.” 다소 공격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만큼 체중감소에는 ‘고통 없는 영광이 없다’는 만고의 진리가 적용된다는 말이다.

     

40대의 모습만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중병에 걸린 사람으로 인식될 만큼 체중이 줄었다. 야금야금 줄어들었기에 느끼지 못했던 것을 병원 가보라는 권유로 새삼 부각이 됐다. 작은 키에 체중까지 줄어드니 최근 옷 입기의 키 워드는 몸을 크게 보이는 것에 맞춰진다. 통바지, 주름치마는 몸을 커 보이게 하는 대표선수다. 그렇지만 체중계에 올라서서 희비가 엇갈리기는 체중을 줄이려는 남편이나 체중이 줄어드는 나나 마찬가지다.      


남편만큼이나 나도 체중계에 자주 올라간다. 숫자에 놀라 ‘쿵’하고 마음이 내려앉는 경우가 다를 뿐이다. 남편은 체중을 밝힐 때 그램 g단위로 이야기한다. 체중을 줄여서 말하고 있다는 심증이 간다. 기름진 안주를 곁들이는 남편 술자리의 결과는 다음 날 아침 체중계가 여지없이 알려준다. 야식을 하는 남편에게 1~2kg 체중 증가는 식은 죽 먹기다.


식은 죽을 먹었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정답은 하나다. 운동이다. 러닝머신에 올라가거나 등산, 이도 저도 안 될 땐 계단 오르기라도 하는 남편이 밝히는 운동의 이유는 딱 한 가지다. 체중을 유지해 술을 마시기 위해서다. 남편에겐 술이 가장 좋은 삶의 반려 주酒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공식적인 반려자 아내와 비공식적 반려자 술과 함께 하기 위해 오늘도 러닝머신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린다.     


나도 땀을 흘리며 운동한다. 적당한 운동인 산책과 요가는 소화작용을 돕는 친구들이다. 요가 동료들은 내가 요가 동작을 수월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물 위의 백조처럼 우아한 요가 동작을 위해 부들부들 떨리는 심장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오늘도 스몰(S) 사이즈의 요가 옷은 내 차지가 됐다.

  


나이가 드니 체중을 좀 늘리고 싶어 졌다. 늘어난 체중만큼 후덕함도 쌓일 것 같았다. 남편에겐 식은 죽 먹기인 체중 늘리기가 나에겐 고시공부보다 어렵다. 며칠 잘 먹고 몇 그램 늘어난 체중을 확인하고 흐뭇해할 때쯤이면 이어지는 것이 소화기의 반란이다. 외식과 단 짠 음식으로 울상이 된 속을 달래려고 한의원에 가면 억울한 심정부터 어놓게 된다.


잘 때까지 먹어도 문제없는 위를 가진 남편에 비해 조금치의 과식도 허용하지 않는 내 소화기의 불평등을 토로하고 나면 절반은 속이 조용해진다. 차근차근 억울함을 들어주는 원장님은 명의가 분명하다. 이것저것 먹은 음식을 이실직고한, 역시나 같은 위장병을 앓고 있는 친구에게는 “위()에 예의를 지키세요”라고 했다는데 들을수록 명 처방이 아닐 수 없다. 역시 모든 세상사의 핵심은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사실 위에 예의를 지키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글쓰기의 3대 원칙이 있듯 나에게도 위장병의 3대 원칙이 있다. 소식, 자극적 음식(맛있는 음식) 퇴출, 소화되기 전 눕지 않기이다. 우선 과식의 위험이 있는 외식을 줄이고 간을 적게 한 음식을 개미 모이 먹듯 해야 한다. 외식을 조심해야 해서 밥 약속을 줄이면 대인관계가 뚝 끓어진다. 가뜩이나 빈약한 대인관계가 씨가 마르게 생겼다. 그것은 지인들에게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못된다. 입맛은 그대로인데 식사 양을 줄이는 것도 보통 문제가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먹는 것이 행복의 일 순위인데 그 근처에도 못 가니 매일매일 행복 결핍에 시달렸다. 한참 소화기로 고생할 때, 내 소원은 아무 걱정 없이 배 터지게 먹어보는 거였다. 내가 북녘 동포도 아니었으니 대부분 솔직한 내 소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위에게는 지키지 못하는 예의를 남편에게 요구하기로 했다. 밤 간식으로 술상이 일상인 남편에게 식욕은 남 못지않은 나를 위해 밤 시간엔 음식을 피해달라고 했다. 나에게 예의를 지키기 위해 밤 간식과 술을 줄이면 본인의 몸에도 예의를 지키는 것이 된다는 합리적인 이유도 덧 붙였다. 예의 운운하며 꽤나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술자리가 거룩해질 거 같았다.      


다음 날 남편은 나름 예의를 지키겠다며 술상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Tv앞에서 마시던 술을 방으로 옮겨 혼술을 하게 되니 나는 졸지에 남편에게 예의를 지키지 못한 아내가 되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설거지거리로 남편의 안주를 확인하며 남편이 나에게 지킨다는 예의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했다.     


나는 친구처럼 원장님께 먹은 것 모두를 밝히진 않는다. ‘위에 예의를 지키지 않는 샘플 환자’로 인용된다면 그 또한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전 11화 흔한 것이 귀한 것이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