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 전, 남편을 데리고 한국에 왔던 동생은 “언니, 그냥 편하게 말하면 돼‘라고 했다. 아버지는 처음 보는 영국인 사위를 포옹하며 바디 랭귀지로 환영의 뜻을 밝혔다.
“Nice meet you”라고 인사하니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수다라면 문제없는 나였지만 제부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때부터였다. 제부와 눈이 마주치면 계속 미소 지었던 게.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언어였다. 전화영어를 매일 하는 남편은 좀 나으려니 했는데 “음, 음”하는 입말 말고는 역시 바디 랭귀지였다. 게다가 제부는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신다니 남편과의 대화는 물 건너간 격이 되었다.
동생 부부는 우리가 사는 소도시에서 며칠을 머물렀다. 다행히 제부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어디를 가든 카메라로 소통했다. 영어가 무서운 나에겐 다행이었다.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먹게 된 동생을 위해 맛 집이란 맛 집은 다 갔는데 제부는 겸연쩍게 웃으며 쳐다보기만 했다. 처음 쥐어보는 젓가락으로 음식을 꾹꾹 찍어볼 뿐 선뜻 입으로 가져가질 않았다. 마지막으로 도시를 떠나기 전 기차역 근처 식당에서 소박한 생선가스를 먹었다. 좋은 식당이 없어 마음에 걸렸는데 제부는 눈을 반짝이며 생선가스를 맛있게 먹었다. 제부에게는 그날의 첫 끼니였다. 사람의 호의는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대답을 듣는 경우가 많다. 영어를 몹시도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마음을 전하는 데 언어는 그리 필요치 않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은 퇴직하기 전 여행 준비 1순위로 영어공부를 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는 셋이서 근처 어학원에서 초급영어회화를 같이 듣기도 했다. 나의 영어 이름은 그레이스였지만 영어회화는 전혀 그레이스 하지 못했다. 가족이 함께 있는 게 보기 좋다며 강사 엘디가 이런저런 말을 붙여 와서 오히려 엘디의 한국어 실력을 늘리는데 일조했다. 수업이 끝나면 근처 포장마차에서 붕어빵을 사 먹는 게 소소한즐거움이었다.
남편은 어학원 수업은 여차하면 영어 한 마디못한다며 전화영어를 시작했다. 전화영어 2년 동안 내가 제일 많이들은 영어 단어는 ‘Very good, Thanks a lot’이었다. 본인 성격답게 감탄사 일색이었다. Favorite food를 묻는 강사의 질문에 기쁘게 비어!라고 외친 후 필리핀의 유명 맥주를 소개받았는데 한동안 각종 맥주에 대한 음주 후기로 통화 분위기가 따끈따끈했다. 남편은 한결같이 Very Good!이라는 감탄사로 하루 10분의 전화 영어를 이어갔다.
남편은 영어는 문장이 아니라 몇 개의 단어면 된다고 했다. 해외여행을 하자면 여행지 공항에서부터 바짝 긴장해있는 나와는 달리 몇 개의 단어와 특유의 미소로 막힘없이 언어 난관을 헤쳐 나갔다. 남편 의사소통의 9할은 성격이 좌우했다. 마켓에 가서도 계산기를 들이대며 물건을 흥정했다. 러시아에서는 아침산책 후 숙소를 찾지 못해 헤매다가 숙소 근처 기차역을 생각하고 좌판 할머니께 “블라디보스토크 칙칙폭폭?”이라고 묻고 찾아온 경우도 있었다. 남편의 영어는 재치가 9할이었다.
동생은 학생 때부터 영어공부 소모임을 꾸준히 하며 영어회화에 익숙해졌다. 그러더니 영국에서 영어로 연애를 했다. 나는 해외여행도 좋아하지 않고 남편도 퇴직했으니 지금 살고 있는 한국 땅 지방 소도시에서 살 확률이 거의 100%다. 그러니 영어가 과연 얼마나 필요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영어를 입 밖에 내는 경우는 딱 한 가지다.
손주에게 하는 사랑고백, “I love you”다. 하루에 수도 없이 한다.아직 이 말 밖에는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단지 “영어, 꼭 필요할까?”라는 다소 건방진 질문을 하는 것은 성격으로 모든 언어를 대신해 의사소통을 하는 남편이 옆에 있으니 하는 말이다. 나에겐 남편이 최고의 통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