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여행으로 모처럼 잔소리에서 해방된 K가 남편을 불렀다. 이때쯤이면 술자리가 파했겠다 싶은 시간에 남편으로부터 안주를 챙겨 술자리에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안주를 챙길 것이 아니라 남편을 챙겨야 하는 시간이기에 서둘러K의 집으로 가보니 주거니 받거니 한 술병이 거실 한 바닥 놓여 있었다.
잠깐 화장실에 갔던 남편에게 일이 생겼다. 문이 잠겨 버린 것이다. 당황한 남편은 안에서 계속 문고리를 돌렸고 나도 밖에서 문을 열려고 안간힘을 썼다. 양방향으로 조임을 당한 문고리는 어느 순간부터 꼼짝을 안 했다. 남편은 화장실에 갇힌 형국이 되었다.
남편은 폐쇄공포증이 있다. 아파트 20층 꼭대기 층에 살며 내려가는 승강기에 갇히기를 여러 번 했다. 그때만큼은 아니어도 남편도 나도 좀 초조해졌다. 밤 12시가 넘는 시간,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었다. K와 남편은 한참 기분 좋은 취기에서 화들짝 깼지만 문제 해결 능력은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남편이 문을 사이에 두고 나를 불러 한 마디를 했다.
“어서 맥주 한 캔냉동실에 넣어. 나가면 바로 먹을 수 있게”
최적의 온도로 세팅돼야 한다는 말이었다.좁은 화장실에 20여분 갇혀 있으면서 오르는 혈압을 조종할 수 있는 최고의 해결책으로 맥주를 생각해 낸 것이었다. 인생 반려자인 내가 번번이 반려주에게 밀리는 형국이야 평생 경험한 일이지만 이번에도 역시, 또 밀렸다.
맥주 한 캔을 냉동실에 넣고 최적의 온도로 세팅되는 20분 이내에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마침 숙직 중이었던 관리실 직원이 왔고 문고리를 뜯어내는 것 밖에는 해결책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고속 드릴로 문고리 주변을 뚫었고 마침내 문고리는 뜯겼다. 문에는 지름 10센티 정도의 구멍이 뚫렸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남편은 구조됐다.
구조된 남편은 최적의 온도로 세팅된 캔 맥주를 손에 들었다.
초초함은 사라지고 특유의 너그러운 미소가 번져 나갔다.
반려자, 반려주
모음 한 끝 차이인데도 반려자인 나는 오늘도 반려주에게 밀렸다.
여행에서 돌아온 K의 아내는 당분간 문을 고치지 않겠다고 했다. 구멍 뚫린 문을 볼 때마다 술잔을 내려놓지 않겠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