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기네스북에나 나올 일이야”
남편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특히 운전 중인 남편 옆에서 “여기 처음 오는 곳이네”라는 말이라도 할라치면 아주 기염을 토하며 목소리를 높인다.
“처음이라니, 이 길이 벌써 몇 번째인데 그래. 당신 이렇게 딴소리하는 거 기네스북에나 나올 일이야” 유난히 길 눈이 어두운 나는 직접 운전해 갔던 길도 여간해서 기억하지 못한다. 요즘에는 처음 오는 장소인 거 같아도 우선 한 호흡을 고른 후 “처음 온 거 같기도 한데”라며 불확실한 나의 기억을 애매하게 표현하고 남편의 기색을 살핀다.
운전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신혼 때도 남편에게 일 순위의 자리를 반려주酒에게 내주었던 나는 ‘달리라면 달리고 멈추라면 멈추는’ 예스 YES 정체성 운전에 큰 매력을 느꼈다. 자동차는 모든 것을 내 뜻대로 해 줄 거 같았다. 아이 둘을 낳고 운전을 시작했다. 88 면허로 93년도부터 운전을 시작했으니 그 세월만 해도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 있어야 할 기간이다. 가끔 술 마신 남편을 대신해 운전을 해 줄 때면 베스트 드라이버라는 입에 발린 소리를 듣기는 했다. 그래도 주차에서 만큼은 자신 있다. 앞으로 가는 거, 옆으로 가는 것 다 문제없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길 눈이 어렵다.
무엇이든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다. 운전도 그랬다.
“시동 거는 소리가 좋네요. 그렇게 가볍게 액셀을 밟는 거예요”
연수 선생님 첫마디에 운전을 잘하게 될 줄 알았다. 연수를 마치고 처음으로 동생을 태우고 나간 날, 폼 나게 운전한 지 5분도 채 안 돼 질문을 받았다. “언니는 왜 노란색 불이 켜지면 멈출 생각을 안 하고 속도를 더 내지?”
무면허 승객이 대번에 운전 부족을 잡아냈다.
“노란색 불이 켜지면 빨리 지나가라던데”
내 운전을 칭찬한 선생님은 운전 베테랑들에게나 적용할 것들을 교육한 셈이었다. 연수생이 곧 운전 베테랑이 될 거라고 확신했을 것이다. 처음엔 과속과 신호 무시 등 이것저것을 친절하게 코치하던 남편도 나중에는 뒷자리로 옮겨 탔다. 이혼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면서.
남편과 같이 사용하던 차가 온전히 내 차지가 된 것은 남편의 음주운전이 계기가 됐다. 1995년 당시, 음주운전을 밥 먹듯 해도 멀쩡했던 옆자리의 직원과 달리 남편은 단 한 번의 음주운전에 딱 걸렸다. 5분도 채 안 되는 한 번의 운전으로 평생 음주운전 졸업을 하게 됐으니 운이 좋다고 해야 할 것이다.
남편은 술자리에 갈 때면 차는 늘 집 앞에, 키는 집안에 두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키는 20층인 집까지 올라오지 못하고 경비실에 맡겨졌다. 키를 찾아가라는 남편의 부탁이 전해졌지만 그리 서두를 일이 아니었다.
새로 입사한 직원의 환영 술자리에서 남편의 오지랖이 발동했다. 술에 심하게 취한 신입사원을 데려다 주기 위해 맡겨 놓은 키를 찾기에 이른 것이다. 이것으로 남편은 음주운전의 역사를 쓰게 되었다. 1995년 당시 음주운전의 결과는 70만 원 벌금에 3개월 운전 정지였다. 열쇠를 찾지 않은 내 실수로 차는 내 차지가 됐다. 내 뜻대로 해 줄 것 같은 자동차 앞에서 나는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했다.
날개는 없었다. 전래동화의 선녀처럼 남편이 감춘 것도 아니었다. 내 공간감각, 지리 감각의 부족함 때문에 날개는 채 돋아나지도 못했다. 유난히 지리 감각이 떨어지는 것은 태생인 거 같다. 고등학교 수능 때 당시 인문지리 국토지리 합해 30점 만점인 것을 단 6점을 맞았던 나는 50점 만점에 48점을 맞은 독일어 점수를 완전 도루묵으로 만들었다. 암기과목에 뭔 지리 감각까지 동원하느냐 하겠지만 막상 아파트를 나오면 동서남북을 헤아리며 길을 찾는 것이 나에게는 노력해도 안 되는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여행 차 찾아온 친구들을 대천 바닷가까지 드라이브시킨 후 기차역에 내려줬는데 40분이면 돌아올 길을 내비를 켜고도 여기저기 헤매고 다니느라 서울 도착한 친구들이 보내온 문자를 차 안에서 받아야 했다. 이후로는 웬만하면 도시를 벗어나는 운전은 하지 않는다. 평균 이하의 지리 감각은 결국 입시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이래 이제까지도 인생에 적잖은 불편과 긴장을 주고 있다.
남편이 퇴직하고 로드 매니저를 자처하고 나선 뒤로 운전할 일이 줄어들었다. 남편의 술자리 후가 온전히 운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늘 오가는 길이어도 ‘우리 집’이라고 내비 검색창에 띄워 놓는다. 웬만해서는 내비를 켜지 않는 남편은 한 숨 자고 일어나 습관처럼 “어 집에 다 왔네” 하면서 내비를 끈다. 이때부터가 늘 문제다. 길에 대한 불안감으로 “왜 내비를 끄냐”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아직까지도 이 길을 모르냐”라고 남편이 한 소리 하고 “나는 이런 사람이다. 왜 이런 나를 인정하지 않냐”라고 대화의 방향이 엇나가는 진도가 진행된다. 결국 내비를 다시 켠 남편이 “당신 기네스북에나 나올 사람이야 "라는 말로 오늘의 운전이 마감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