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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질문한다, 고로 나는 아내이다.

by 안나 May 03. 2021

“그러니까 어떻게 만드는 건데요?”

나도 모르게 입에서 질문이 튀어나온다.

“당신은 하지도 않을 거면서 뭐 하러 물어보나?” 옆에 있던 남편의 타박이 이어진다.


나는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종교단체에서 취재 봉사를 하는 것을 아는 지인들은 ‘기자라서 그렇다’고 추임새를 놓지만 내 질문의 역사에는 존중, 존재감, 우정 뭐 그런 단어들이 혼재하고 있다.     


질문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오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듣는 것에 특화된 아이였다. 질문하기 좋아하는 선생님의 수업시간엔 질문을 피하느라 시선처리에 늘 신경을 썼고 지금도 강연장에 가면 질문의 두려움으로 앞자리엔 얼씬도 않는다.      


이런 소심한 내가 결혼을 하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 질문이었다. 늦게 본 큰아들이 귀했던 시부모님은 아들을 옆에 두고 싶어 신혼집 옆으로 아예 이사를 오셨다. 장가를 들어 이젠 어엿한 가장이 된 남편은 퇴근과 동시에 시댁으로 출근을 했다. 나는 남편보다 일찍 시댁으로 출근해서  퇴근한 남편과 식사를 한 후 신혼집으로 돌아오는 게 당시 우리 신혼살림의 루틴 같은 거였다.      


저녁식사 후에는 가벼운 Tv시청이 있어 신경이 덜 쓰였지만 식사 전까지의 공백을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것이 큰 숙제였다. 중매로 만나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결혼을 한 터라 시댁 식구들과는 꽤나 서먹서먹했다. 시어머니와 잘 지내고 싶었다. 어떤 날은 남편보다 더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최측근 가족이기에 관계 증진을 위한 노력은 당연한 거였다.


‘밥이나 한 번 먹자’라는 말이 최고의 인사이듯이 친교는 뭐니 뭐니 해도 함께 먹고 이야기할 때 싹트는 것이리라. 이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초년 주부가 주부 9단인 시어머니에게 묻는 일이었다.     


“어머니, 이 조림 어떻게 하는 거예요?” 저녁 찬을 준비하시는 시어머니에게 한 첫 질문에서 친교의 문이 열렸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요리를 물어 와 주니 이어지는 어머니의 대답도 술 술 막힘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요리에 대한 질문은 신혼 내내 이어졌다. 시댁음식이 내가 먹고 자란 것과는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국과 몇 개의 나물반찬으로 소박했던 친정 음식과 달리 시댁은 탕, 조림, 포, 구이등 다양하고 기름졌다.  매일매일 물어볼 수 있는 음식이 생겨났다. 쌍방향의 대화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었던 시어머니에게 며느리의 질문 하나면 그날 대화의 내용은 충분히 풍성했다.      


시어머니에게 이런저런 조리방법을 듣고 격하게 호응하다 보면 시어머니와의 사이에 끈끈한 연대감이 생겨났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었다. 이 연대감은 음주로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면서 시부모님과 저녁을 먹게 될 때면 더욱 가속화됐다. 남편을 키우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사건들, 특히 남편의 음주에 얽힌 이야기들을 하면서 시어머니의 톤이 높아졌다. 이젠 그 음주 뒷바라지를 맡기게 된 며느리에 대한 미안함이 첨가된 시어머니의 아들 흉보기는 대화의 문은 더욱 활짝 열어 놓았다.     


이후 시댁과 조금 떨어진 곳으로 이사하고 매일의 방문이 어려워지면서 나의 질문은 전화로 이어졌다. 비대면 질문이었다. 질문이 곧 안부 인사였다. 나는 다음날 ‘무엇을 물을 것인지’ 나름 질문지를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조리방법에서 진일보하여 육아와 시댁 역사에 대한 질문으로 그 외연이 넓어졌다.


최고의 전문가 대접을 해주는 큰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제대로 된 훈장을 수여했다. 나보다 키가 20센티 가까이나 더 크고 음식이며 뭐든 잘해서 언니 같은 동서에게 “앞으로는 나 말고 모든 것을 네 형님 말대로만 하면 된다”라고 큰 며느리에 대한 신뢰 선언을 해 버린 것이다. 당시 시어머니에게 나는 최고의 인터뷰어였고 어머니는 내게 최고의 인터뷰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 질문 창으로 모든 질문을 하는 시대이다. 그래도 아날로그식 내 질문의 뿌리는 여간해서 끓어지지 않는다. 특히 음식 이야기가 나오면 절대 그냥 넘어가 지지가 않는다. 큰 며느리로 자리 잡기까지 내 존재를 일으켜준 대화의 시작이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본인의 늦은 퇴근으로 더 특화되었던 내 질문의 뿌리를 모르는 남편은 질문 잘하는 내게 “해주지도 않을 거면서 뭐 하러 조리방법을 묻냐”라고 타박을 한다. ‘아는 것이 힘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힘’이라는데 나는 물어서 알게 된 조리방법을 음식으로는 옮기지 못했으니 이때쯤에선 살짝 목소리에 힘이 빠진다.     


그런 남편에게 나는 질문을 던진다. 남편이 전문적으로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질문이 된다. 다행히 나는 남편이 잘 아는 것에  몹시 취약하기도 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내 질문에 남편의 눈에 빛이 반짝 켜지고, 입에서 열정의 색을 입은  전문용어들이 튀어나올 때 그 모습에서 나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본다. 남편과의 우정이라는 연대감도 날로 깊이를 더해간다. 질문 하나로 나는 아내의 존재감, 남편의 존재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제는 손주에게도 질문을 던진다. 누구에게나 생각의 문을 열어주는 질문 앞에서 두 돌도 채 안된 손주의 작은 눈동자가 동그랗게 커진다. 나에게 질문의 역사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나는 질문한다. 고로 나는 아내이다.


나는 질문한다. 고로 나는 할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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