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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찬스, 할머니 찬스

by 안나 May 31. 2021

그날 나는 엄마에게 완전히 반했다. 잔잔한 꽃무늬 한복을 입고 머리를 올린 우아한 모습의 엄마가 교문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느 여배우 못지않은 아름다움의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왔다. “너네 엄마는 발 뒤꿈치도 이쁘더라”라고 했던 고모의 말은 아마도 이런 분위기의 표현이었으리라. 엄마 손을 잡고 있던 코 찔찔이 막내 여동생에게서도 덩달아 빛이 났다. 고무줄놀이를 같이 하던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야”하는 내 목소리엔 자랑스러움이 가득 묻어났다. 그러나 엄마는 전 학년을 통틀어 딱 2번 학교에 다녀갔다.     


그날도 엄마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4학년에 올라가서였다. 며칠째 선생님은 엄마의 방문을 독촉했다. 그날도 창문 밖 교문 쪽으로 눈길을 두고 고운 자태의 엄마를 기다렸다. 3학년까지는 담임이 지정했던 6명의 임원을 4학년부터는 학생 투표로 결정했다.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는 임원에 나는 투표로 뽑혔다. 몇 번이나 선생님의 임원 엄마 학교 방문 요청을 전했지만 엄마는 별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조용히 시간이 흘러갔지만 무언가 팽팽한 시간의 줄을 잡아당기는 듯한 긴장감도 더해졌다.     


 곧 어린이날이 되었다. 반 아이들에게 선물이 주어졌다. “이 선물은 우리 반 임원 엄마들이 준비하신 거야”라고 말하면 좋았겠다 싶은 말을 선생님은 ‘임원 누구누구 엄마’라고 내 이름이 빠진 5명 임원의 이름을 정확하게 밝히셨다. 임원인데도 빠져버린 내 이름에 수치심으로 얼굴도 마음도 붉게 물들었다. 정확한 말이긴 하지만 한 아이에 대한 배려가 빠져버린 말이었다. 엄마 찬스가 없던 내가 임원 자리에 있는 것은 선생님에게나 나에게나 벅찬 일이었다.      


엄마는 학년이 마쳐가는 연말 즈음에나 학교를 방문하셨다.

“학생들이 많아(당시 80명이 넘었다) 시험지 채점을 혼자 할 수 없어 사람을 써야 한다”는 말에 엄마들이 봉투를 모아 드렸다며 “선생님이 솔직하다”라고 하셨다. 유일하게 상처 준 선생님을 칭찬하는 말에 혼란스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칭찬은 비로소 엄마 찬스를 마친 엄마 자신에 대한 만족의 표현이 아니었나 싶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4학년 선생님의 이름똑똑하게 기억한다.      


학부모가 되고 고수하는 원칙 2가지가 있다. 1년에 한 번 이상은 선생님과 면담을 갖는 것이고 학교 방문 시 정성스럽게 입고 간다는 거다. 언젠가 겨울에 아들을 데리러 가는 길에 원피스를 입고 갔다가 엄동설한에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에게 엄마 찬스는 못 주어도 내가 반했던 엄마의 모습을 재현해내고 싶은 욕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이제는 예전만큼 엄마 찬스가 극성을 부리지도 않고 임원을 하지 않았던 아이들 덕에 나는 학교 방문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어제 손자의 어린이집 학부모 면담에 딸과 함께 다녀왔다. 딸이 요청한 일이니 뒤늦은 엄마 찬스인 셈이다. 본시 수수하기도 한 딸은 둘째 아이를 임신한 터라 옷차림이 더욱 단순해졌다. 할머니인 내가 옷장 문을 열고 옷을 골랐다.      


50여 년 전, 눈부시게 예쁜 엄마의 한복은 나에게는 엄마의 사랑으로 각인되어 있다. 나도 옷장 문을 열고 딸에게, 손자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옷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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