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이 한 마디에 들어있는 투철한 외조 정신에 또 한 방 먹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몇 해 전 성당에서 ‘좋은 영화 상영’을 맡았던 때의 일이다. 좋은 영화를 선정하고, 영화 안에 들어있는 신앙정신을 조명하여 본당 카페에 소개하고, 상영 직전 감상 포인트를 소개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성실’이라는 카드 하나면 충분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타고난 기계치인 내가 노트북과 음향기계를 조절해가며 실제 상영을 준비하는 과정은 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마냥 불안을 공유하는 일이었다. 상영 전 몇 번을 영화를 돌려가며 완벽한 준비를 하였다 해도 실제 상영 날 기계가 터벅거릴 때는 ‘성실’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그 어떤 영역에 놓여 있는 것처럼 암담한 기분이 들곤 했다.
고 박완서 작가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라는 글에서 고등학교 시절 휴강 때마다 학교를 빠져나와 근처 영화관에서 영화보기를 즐겼던 에피소드를 소개한 바 있다. 당시에는 영화를 보다 중간에 끓어지는 사고가 비일비재했던 터라 그럴 때면 준비된 악극단에서 쇼도 하고 만담도 하며 영사기를 고쳐 상영을 계속 이어 나갔다고 한다. 영화가 끓어진 그날도 표 값도 아깝고 해서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비장한 인내심으로 끝까지 관람하고 학교로 돌아와 보니 이미 땅거미가 지는 저녁시간이었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갔더라고 회상했다.
영화 ‘배터리’를 상영하던 날, ‘오늘도 무사히’라며 애처롭게 바라보는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영화가 끓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가슴을 조이며 영화를 끓어버린 노트북 앞에서 협박 비슷한 기도를 반복했지만 기계는 원래 말이 없지 않던가. 꿈쩍도 않는 노트북을 몇 번 더 클릭하며 애원하다 결국 관객을 다 돌려보내고 나니 온 몸의 배터리가 모두 방전된 느낌이었다.
고 박완서 작가의 추억을 소급하며 “우리는 이때를 대비해 준비된 악극단도 없는데”라는 내 말에 남편의 터무니없는 자신감이 발동한 것이다. “내가 하면 되지. 다음에 영화가 끓어지면 내가 노래하고 춤출게.” 순간 머리털이 쭈뼛해졌지만 일시에 몰아쳤던 긴장도 한 발 물러서는 느낌이 들었다. 동시에 앞으로는 절대 영화가 끓어지는 일 따위는 없어야겠다는 굳은 의지가 발동했다. 남편이 노래한다는 것은 영화가 끓어지는 일 이상의 사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신의 장단점을 잘 구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단점 속에서도 장점을 더 잘 찾아냈다. 이것은 초등학교 시절의 경험에서 유래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남편에게는 유일하게 이름을 기억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있다. 칭찬 때문이었다. 남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노래 부르기로 실기시험을 봤는데 나름 열심히 노래한 남편에게 선생님은 “영수는음치로구나”라고 한마디를 하셨단다. 그 말씨가 어찌나부드러웠던지 남편은 음치란 단어를 노래 잘 부르는 가수쯤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대체로 모든 것을 좋게 바라보는 남편의 초 긍정마인드는 기억의 회로마저도 장미 빛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처가에 와서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동생들을 보고 신기해했다.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는데 남동생은 “누나, 웬만하면 매형 어디 가서 노래하지 말라고 해”라는 말로 남편의 음치 선언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1차 음치 선언이 봄바람 같은 목소리에 실려 와서인지(음치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된 것은 훨씬 후의 일이었다는데) 여전히 흥얼거리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면 심정적으로는 아직도 음치란 단어의 정확한 뜻에 동의하지 못하는 게 틀림없다.
노래방 문화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 나는 동생과는 달리 남편에게 어디서든 제일 먼저 노래하라고 충고했다. 한껏 달아오른 노래방의 흥을 깨는 것보다는 노래의 첫 문을 여는 이에게 주는 호의라는 점수를 받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지금도 7080 노래 듣기를 밥 먹듯 하는 남편은 음치이긴 해도 감성은 그 어느 누구 못지않다.
그런 남편이 예나 지금이나 한 결 같이 부르는 노래는 조동진의 ‘행복한 사람’이다. ‘울고 있나요? 외로 운가요?’로 묻고 시작하는 노래에 한껏 감성을 실어 부른다. 흥을 돋우길 기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울고 있냐고, 외로우냐고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는 남편을 지켜보며 음치와 감성이 만나는 자리를 확인하곤 한다. 첫 곡의 사명이 무색해지는 순간이긴 해도 ‘당신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목 놓아 선언하는 남편의 선곡이 탁윌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부부가 함께 노래 부르는 자리에서는 20년 성가대 경력의 나는 내조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우리 부부의 애창곡은 사월과 오월의 ‘등불’이다. ‘비 오는 저녁, 홀로 일어나 창밖을 보니’라고 시작하는 노래의 초반부는 성실하고 정직하게 부르는 게 답이다. 이어지는 ‘외로운 나의 벗을 삼으니 축복받게 하소서’라는 부분은 남편의 아슬아슬한 음 이탈의 긴장 속에서 진행된다. 그래도 ‘축복, 벗’이라는 말들은 남편을 설명하는 단어로 꼭 들어맞는다.
그렇게 한 소절 한 소절씩 이어지는 우리 부부의 릴레이 노래 부르기는 ‘넓고 외로운 세상에서 길고 어둔 여행길 너와 나누리’라는 부분에서 고비를 맞는다. 다소 격앙된 감정과 결심과 고음으로 진행되는 소절에서 남편의 음 이탈은 30년을 교정해보려는 나의 노력을 번번이 헛되이 만들어 버리고 만다.
이럴 때는 할 수 없다. 남편의 손을 덥석 잡는 것이다. 손을 잡고 남편의 음 이탈을 내 목소리로 덮어 함께 부르는 것이다. 그러면 음치와 감성이 최고조로 연합한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사실 노래를 부르게 되는 시점은 남편이 알코올의 힘으로 가수 뺨치는 감성을 가지게 되는 때라서 과도한 애드리브를 자제하기만 하면 무난하게 노래를 마칠 수 있다.
남편과 부르는 듀엣의 핵심은 손을 잡는 데에 있다. 아내의 손을 잡는 것보다 술잔을 잡는 게 더 짜릿하다는 남편도 손을 잡히고 노래하는 모습에선 최고의 공처가 모양새가 된다. 남편의 따뜻한 손에서 전해지는 마음의 온도에 내 표정도 넉넉해진다. 술에 취하면 자동 공처가 모드로 전환되는 남편이 노래까지 함께하니 노래실력의 유무는 그리 의미가 없어진다.
내 경험상 그래도 남편이 박치가 아닌 음치라서 다행이다. 박치는 존재감이 너무 강해 듀엣에는 난공불락의 성을 쌓지만 음치는 소리만 줄이면 듀엣이든 합창이든 다 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음 이탈은 참을 수 있지만 박자 이탈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로 남편을 위로한다.
영화가 끓어지면 꼭 노래하고 춤출 필요는 없다. 이미 남편과 함께 부르는 노래로 따뜻한 마음을 많이 전해받았다. 노래 가사처럼 비 오는 저녁, 남편이 창밖을 보는 일은 없었으나 서로 벗을 삼고 축복을 빌어준 세월이 있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 음치도 얼마든지 노래하며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이다.